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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느티나무가
고향집 앞 느티나무가
터무니없이 작아 보이기 시작한 때가 있다.
그때까지는 보이거나 들리던 것들이
문득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나는 잠시 의아해하기는 했으나
내가 다 커서거니 여기면서,
이게 다 세상 사는 이치라고 생각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 고향엘 갔더니,
고향집 앞 느티나무가 옛날처럼 커져 있다.
내가 늙고 병들었구나 이내 깨달았지만,
내 눈이 이미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진 것을,
나는 서러워하지 않았다.
다시 느티나무가 커진 눈에
세상이 너무 아름다웠다.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져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이 더 아름다웠다.
신경림.<사진관집 이층>. 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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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많이 흘렀다. 흙 묻은 가락으로 農舞를 추던 시인도 기력이 좀 떨어졌겠다. 詩도 느려졌다. 禍도 수그러들었다. 대신 세상을 더 아름답게 보는 詩眼이 두터워지셨다 한다. 황토 대신 서울 한복판의 폐허를 보는 시인의 삶. 그 곳에서도 세상이 좀 더 나아져야 한다는 한결 같은 목소리. 오래 건강하셔서 세상이 푸르러지는 걸 노래하실 수 있길 빈다.
신경림.. 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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