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가족 그리고 기억

어머니를 떠나보낸 기록

취몽인 2020. 9. 27. 18:00






어머니가 떠나간 얼마간의 기록


2020 8/19

느낌이 좋지 않아 이 기록을 시작한다

낡은 아파트에 혼자 누워 '나는 이렇게 꺼져가는구나.' 하고 있을 어머니. 돌아오는 일요일은 그녀 남편의 37번째 기일.

8/21

한번도 어머니를 사랑한 적 없다. 스스로 기이할 정도로. 그것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은 어머니의 책임으로부터 비롯됐다. 어머니가 죽으면 나는 울지 않을 것이고 비로소 한 자유를 얻게 되리라 생각한다. 비정한 일이지만 오래 된 일이기도 하다.

08/23

아버지 기일. 목이 아프다. 그럴 리 없지만 혹시 코로나면? 노인에게 옮기면 치명. 싸간 반찬 내려놓고 예배 대신 기도만 잠깐 하고 나왔다. 황당한 어머니 모습. 역병보다 자식들 금방 가는게 더 무서운 얼굴. 손녀에게 생전 안하던 말 한다. 난 너무 외롭단다. 돌아오는 길이 아득했다.

200823

忌日

오래 전 오늘 이 때
아버지 묻고 집에 온 때
댓돌에 구두 한 컬레
발목 없이 놓였었지

아무도
아무 말 없이
벽만 쳐다 봤었지

8/31

주말에 또 넘어져 손바닥을 꿰맸다는 통화.
자꾸 넘어진다. 바닥을 향하는 몸.
그 몸의 중력이 슬프다.

결국 목숨 또한 당기는 흙쪽으로 다가 가는 것.

바다에 뼛가루를 뿌리는 방법에 대해 생각한다.
떠나간 존재를 보다 빨리 다시 만날 수 있는 방법.
순환의 촉진은 과연 의미있는 일일까?

동생의 생일날. 아들 둘을 모두 9월에 낳았다.
남편도 9월이 생일.
어머니에게 9월은 만남의 계절이다

9/3

손 다친 어머니를 보러 다녀오다. 출근길에 들르는 척. 돈벌이에 방해되는 걸 싫어하는 어머니.
쌀 5kg 주문해주고 LA갈비 두 팩 전해주고 돌아나왔다.
넘어지면 절대 안됩니다.
30년 뒤를 비추는 거울은 등이 굽었다.
그때까지 내 거울은 버티지 못할 것이다.


9/11

전화해야 한다. 외로울 것이다. 실밥은 풀었을까?
그러나 전화거는 일인 여전히 즐겁지 않다.

9/15

58년전 어머니는 엄마가 됐다.
32년전에는 할머니가 됐다.
이제 또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그 무엇 또는 어디

그 곳을 바라보는
한 여자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9/23

전쟁이 시작됐다. 또 넘어져 꼼짝 못한다.
움직이지못해 똥도 바닥에 쌌다.
평생 처음 어머니의 거웃을 닦고 옷을 갈아입혔다.
쉽지 않다. 오늘 요양병원에 입원 시킨다.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12시 쯤 아내 도착



부끄러웠을까
58년 만에 처음 보여준 하초는
똥으로 칠갑이 되어 있었다
닦고 닦아도
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침대에 올려다오
그 한 마디를 끝으로
긴 잠에 빠졌다

그런 줄 알았다

깨지 않았다
지금은 응급실
다시 깨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의사의 말

왜 갑자기 잠들었을까

잠들고 싶었을지 모른다
영영 깨어나지 말았으면
생각했을지 모른다

똥이 뭐라고
내 똥을 얼마나 치웠을텐데
그게 뭐라고
안 깨어나시는가
엄마

-------------

엄마
힘내

아들이 할 말이
이것뿐이네

엄마
힘내

9/24

1시
의식 불명

3시
요양병원으로 응급이송

5시
강남성심병원 응급실 도착. 의식불명 지속

10시
중환자실 이동.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
산소포화도 낮아 인공호흡기 장치.
심장 수치 위험
11시 귀가


9/25

1230
중환자실 면회.
말은 못하지만 아들을 알아봄.
자꾸 손을 잡고 놓지 않으려 함.ㅠ
염증수치가 아직도 위험.

1600
병원에서 심정지 통보 옴
CPR 거절.

1810
사망확인. 사망선고
인공호흡기로 숨은 쉬고 있으나 심장은 멈춤

1850 
하늬 도착. 수습 전 마지막 얼굴 만져봄

1930
무늬, 건욱 도착. 장례식장 이송 전 얼굴 봄

2000
한강성심병원 장례식장 안치 및 빈소 설치

2200
귀가. 건욱, 수의 및 영정 가지러 감


9/26


1330
입관예배

1400
입관, 마지막 모습 본 시

9/27

1120
발인 예배.
무늬와 결혼할 계획인 원준이 함께 함

1150
장례식장 출발

1230
벽제 화장터 도착

1400
7번 로에서 화장

1520
분골 그리고 유골함 받음.
300그램의 회색가루가 된 어머니

1600
통일로추모공원 유골함 안치
하늬가 십자가와 꽃을 같이 넣음
어머니 혼자 두고 떠나옴. 늘 그랬듯이.

1730
병원도착

1800
남은 다섯 식구와 예비사위와 함께
어머니 없는 가족식사를 처음으로 함

1900
건욱은 상계동으로
우리는 집으로
영정과 위패만 들고..

9/28

1130
우리 가족만 교회 예배 참석

1300
아이들은 외출
아내는 앓아누움..

1500
빠뜨린 몇 사람들에게 사후 연락. 집 정리

1740
이 기록을 끝냄.

나는 이제 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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