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詩 읽기

이 時代의 사랑 / 최승자

취몽인 2021. 1. 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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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나는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앗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최승자 . 문학과 지성 시인선 16.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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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을 들어갔던 해에 나보다 열 살 많은 시인이 세상에 내놓은 첫 시집.
여기저기서 이 시집에 담긴 시들을 읽은 적 있지만 온전히 시집 한권으로 읽은 건 신기하게도 처음.
늘 그랬지만 詩는 읽어내기 힘들 정도의 고통들이 가득. 詩가 시인에게 고통을 준 것인지, 고통이 시인에게 詩를 떠맡긴 건지 궁금한 시인과 詩.
이런 괴로움앞에 詩의 역할은 뭘까? 독자의 역할은 뭘까? 최승자의 詩는 늘 이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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