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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픈 사람
네게로 쏟아지는 햇빛 두어 평
태양의 어느 한 주소에
너를 위해 불 밝힌 자리가 있다는 것
처음부터 오직 너만을 위해
아침 꽃 찬찬히 둘러 본 뒤
있는 힘껏 달려온 빛의 힘살들이 있다는 것
오직 너만을 위해
처음부터 준비된 기도가 있다는 것
너를 위해 왔다가
그냥 기꺼이 죽어주는 마음이 있다는 것
그러니 너도 그 햇빛
남김없이 더불어 다 흐느껴 살다 가기를
이승에서 너의 일이란
그저 그 기도를 살아내는 일
그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햇빛처럼 남김없이 피어나
세상의 한두 평 기슭에 두 손 내미는 일
착하게 어루만지는 일
더불어 따뜻해지는 일
네가 가진
빛의 순수와 열망을 베푸는 일
스스로 용서하는 일
나, 라고
처음으로 불러주는 일
세상에 너만 남겨져
혼자서 아프라고 햇빛 비추는 것 아니다
-류근 . 문학괴지성.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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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쓸쓸한 하루키 또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초라하게 밀어부쳐 삶을 디딜 바닥을 다지는 시인. 도시적이지만 변두리 키 큰 나무 같은, 늘 비나 바람 방금 지나간 버스가 뱉은 먼지를 뒤집어 쓰고 신 김치에 막걸리를 더듬는 사람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시. 그리고 시인. 대강 이런 이미지가 섞여 류근 시인은 내 속에 있다.
친한 여자 후배의 동네에 살며 아이들끼리 친구여서 학부모로 알고 지낸다는 시인. 그 동네는 잘 사는 동네이고 텔레비전 프로에도 고정으로 출연해 가끔씩 고급스럽게 울기도 하는데 정작 그는, 그의 시는 늘 독립문 염천시장 선술집을 기웃거리는 시를 쓰고 있으니 그의 선 자리를 잘 가늠하기 힘들다.
어쨌든 그의 시집을 처음 읽었다. 그리고 위와 같은 생각이 잔뜩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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