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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은목서 향기를 노래함
내 마음이 가는 그곳은
당신에게도 절대 비밀이에요
아름다움을 찾아 먼 여행 떠나겠다는
첫 고백만을 생각하고
당신이 고개를 끄덕인다면
그때 나는 조용히 웃을 거에요
알지 못해요 당신은 아직
내가 첫여름의 개울에 발을 담그고
첨벙첨벙 물방울과 함께 웃고 있을 때에도
감물 먹인 가을옷 한벌뿐으로
눈 쌓인 산언덕 넘어갈 때도
당신은 내 마음의 갈 곳을 알지 못해요
그래요 당신에게
내마음은 끝내 비밀이에요
흘러가버린 물살만큼이나
금세 눈 속에 묻힌
발자국만큼이나
흔적 없이 지나가는 내 마음은
그냥 당신은 알 수 없어요
알 수 없어요
-곽재구 <와온 바다> 창비시선34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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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꽃 이름 나무 이름을 익히려고 애써왔다. 오늘 곽재구시인의 시집을 다시 읽고 그 노릇이 부질 없다 싶어졌다. 내 사는 곁에 있는 꽃이랑 나무는 고작 몇 십 종. 그나마 뻣뻣한 목숨들인데. 시집 속 시들에 적어도 하나씩은 나오는 꽃이며 나무는 너무나 생생한 생활들이어서 주눅이 든다. 부럽기 짝이 없다. 시들도 부럽지만 시인 주변의 바다와 강, 꽃과 나무, 아무개씨들 같은 것들이 너무 부럽다.
아, 그게 시의 힘인가? 시인의 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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