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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보청기, 가족의 귀는 가족만이 지켜줄 수 있습니다.

취몽인 2022. 7. 2. 13:34

장모님도 가족 조카도 아재도 모두 가족

토요일 아침 일찍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오산에 있는 조카의 장모님 보청기를 맞춰드리고 왔습니다. 한 때 동탄으로 출퇴근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텅 빈 주말 아침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오늘 만난 조카와는 좀 특별한 사이입니다. 사촌 큰누님의 장남인데 저하고는 오촌 사이입니다. 누님과는 나이 차이가 좀 많이 나서 조카와 저는 겨우 세 살 차이입니다. 어릴 적 멀지 않은 동네에 살아서 우리집과 조카집을 오가며 친구처럼 자란 사이지요. 절 보고 꼬박꼬박 삼촌이라 부르는데 어릴 적에는 당숙이라는 촌수를 쓰기는 어색했으니 그냥 이촌 정도를 생략하고 삼촌이라 불렀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저도 조카도 적지 않게 나이를 먹었고 아이들도 있으니 호칭 정리를 하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딸만 둘이라 평생 며느리 볼 일이 없는데 오늘은 조카며느리도 같이 봤습니다. 상당히 어색하더군요. ㅎㅎ

조카의 장모님은 올해 95세였습니다. 연세에 비해 총기도 있고 건강하셨습니다. 다만 어릴 적 귀를 앓으셔서 오른쪽 귀는 청력을 거의 상실하셨고 왼쪽 귀는 68데시빌 정도의 중고도 난청 상태였습니다. 다행히 미리 청각장애등급을 받으셔서 국가지원금으로 보청기를 해드릴 수 있었습니다. 오른쪽 귀는 보청기를 착용해도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왼쪽 귀라도 잘 듣도록 하는 게 최선이었습니다. 그 동안 많이 불편하셨을 텐데 왜 이렇게 보청기를 늦게 해드리냐고 조카에게 지청구를 했더니 그간 장모님이 완강히 거부하셨다더군요. 어머니들은 대부분 한결 같으십니다. 내 불편 보다 자식 부담이 더 싫으신 거죠. 하지만 자식들이 너무 불편하니 어쩔 수 없이 보청기를 하셨습니다.

마음 따뜻한 일은 보청기를 착용하고 난 뒤 있었습니다. 보청기를 끼고 난 뒤 소리를 얼마나 잘 듣는지 테스트를 위해 사위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장모님 입에서 뜻밖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우리 두식이” 라고 사위 이름을 부르시더군요. 이름 앞의 ‘우리’라는 말이 참 정겨웠습니다. 장모와 사위 사이의 친근함이 듬뿍 묻어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보청기를 착용하는 동안 장모님을 도와드리는 조카의 행동도 참 살뜰했습니다. 곁에 있는 딸보다 더 편해보이더군요. 문득 대구 요양병원에 오래 누워 계시는 제 장모님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조카처럼 그렇게 장모님에게 살뜰한 사위가 못됩니다. 늘 그렇듯 무뚝뚝한 맏사위지요.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조카에게 한 수 배운 셈입니다. 오후엔 전화라도 드려야 할 것 같네요.

누님의 아들 조카, 아내의 어머니 장모님, 따져보면 얼마나 가까운 가족입니까. 그런데 누구는 가족에게 사랑이 듬뿍 묻어나는 행동을 하고 누구는 남보다 못하게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저 성격 탓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특히 연로하신 장모님은 이제 기껏해야 얼마 지나지 않으면 다시는 볼 수 없게 될텐데, 살아 계신 동안 더 잘 해야 후회가 없겠지요. 이러고는 또 잊어버립니다. 사람의 이기심이란 한심한 것이지요.

어쨌든 조카의 장모님 덕분에 한 동안은 오산 출장을 몇 번 다니게 생겼습니다. 고령으로 운신이 힘드시니 보청기 적응과 사후관리를 위해 제가 찾아 뵐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마다 지금 하는 반성도 거듭되겠지요. 그러다 보면 제 태도도 좀 바뀔 지 모를 일입니다. 조카가 만들어 준 이 각성의 계기를 감사히 생각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