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보청기안양만안구청센터

안양보청기, 얼굴과 목소리가 기억을 만듭니다

취몽인 2022. 9. 15. 15:00

얼굴과 목소리

 

 

어떤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은 다양할 것이다. 함께 했던 어떤 일로 기억할 수도 있고 특정의 순간이나 상징 같은 것으로 기억할 수도 있다. 이런 다양한 사건의 기억일지라도 누군가를 떠올리면 우리는 대게 얼굴이나 목소리를 호출해서 연상을 하게 된다. 그 사람의 얼굴, 그 사람의 목소리는 내 마음 깊은 곳에 차곡차곡 저장되었다가 필요할 때 어김없이 나타난다.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는 나에게서 먼 사람이거나 완전히 잊힌 사람일 것이다.

 

얼굴을 기억하는 것은 시각적 메모리고 목소리를 기억하는 것은 청각적 메모리다. 어느 쪽 메모리의 성능이 좋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누군가를 떠올릴 때 아무래도 시각적 메모리인 얼굴이 먼저 떠오르는 것 같다. 목소리는 동시에 떠오르거나 일부러 떠올리려는 노력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얼굴은 보편적 기억이고 목소리는 특정적 기억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기억 속의 목소리를 재현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대체로 어렴풋하게 가슴 속에서 울린다. 기억 속의 소리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듣는 진동이나 파장으로서의 물리적 소리가 아닌 심리적 재현의 소리인 탓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지금 만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조용히 눈을 감고 그 사람의 목소리를 떠올려 보자. 머릿속에 있던 목소리는 당신이 잊었던 그 사람과의 추억까지 되살려 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줄래요? – 황승택. 민음사. 2022) 인용한 작가의 말처럼 지금 잠깐 눈을 감고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부모님의 목소리를 한번 떠올려보자. 어머니의 생전 얼굴과 함께 그 목소리가 마음 속에서 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마음 속 기억의 창고에 고스란히 쌓여 있다.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기억 속의 얼굴은 어느 특정 시점의 인상으로 남는다. 첫사랑의 얼굴은 지금 환갑을 넘긴 나이일지라도 스무 살 풋풋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기억 속의 얼굴은 늙지 않는다. 그래서 더 소중할지도 모른다. 오래 전에 심심하면 여러가지 얼굴을 그리곤 했었다. 대단한 초상화가 아니라 그저 얼굴 윤곽 안에 눈과 입 정도를 짧은 선으로 그려 표정만 담는 낙서 수준의 그림이다. 한참이 지나 최근에 그 그림을 다시 그려봤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얼굴들을 호출해서 한 캔버스 위에 담아봤는데 신기하게도 이름만 떠올리면 그 사람의 인상이 같이 떠올랐다. 특별한 추억이 같이 떠오른 사람이 있었고 어느 한 순간의 표정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100여명 정도의 얼굴을 그리는 사이 지나온 세월이 머리 속으로 휙휙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사람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결국 수많은 관계를 거치며 이루어진 셈이다. 목소리와는 다른 얼굴의 힘이다. 

 

22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