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복의 역습
입춘 한파가 잦아들고 나니 날씨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윤석렬 탄핵 마지막 변론일이기도 한 다음 주 화요일이 절기상 우수이니 12월초부터 여러모로 꽁꽁 얼었던 온나라가 시나브로 녹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도 단열이 시원찮은 사무실은 여전히 추워 난방기를 세 개나 켜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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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 대한을 지나면서도 입지 않은 내복을 지난 주 입춘 추위를 지내면서부터 지금까지 입고 있다. 주로 아랫도리가 시려 얇은 내복바지만 입고 있는데 솔직히 지내기가 한결 편하다. 추우면 사무실에 앉아 있어도 안정감이 없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하기 일쑤다. 그런데 내복을 입고나선 그런 꼴을 면했다. 다만 안 입다 입으니 아랫도리가 좀 답답하긴 하다.
철 들고부터는 내복을 입지 않았다. 국민학교 시절까지는 꼬질꼬질한 면 내복을 입었는데 중학교에 들어가 교복을 입으면서 내복은 입지 않았던 것 같다. 국민학교나 중학교나 겨울이면 가끔 난로에 갈탄이나 때던 교실이 엄청 춥기는 매 일반이었는데 사춘기를 맞으며 내복을 입으면 왠지 유약한 사내가 되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100% 폴리에스테르 교복 바지 아래 맨살로 엄동설한을 지내는 일이 만만찮은 일이었을 텐데 어쨌든 고등학교 시절까지 쭉 입지 않고 버텼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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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도 쭉 내복은 입지 않고 살았는데 작년 겨울에 급기야 항복을 하고 말았다. 젊은 날에는 건강도 지금보다 나았고 움직임도 많아 추위를 견딜 수 있었지만 종일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최근에는 추위를 더 타게 되었는데, 종아리며 허벅지가 시려 견디기 힘들었다. 퇴근 후 추위에 굳은 몸을 하고 있는 나를 본 아내가 미련 떨지 말고 내복을 입으라 내린 명령을 작년 겨울에 받아들인 것이다.
수십년 만에 다시 입어본 내복은 어린 시절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첫 월급 타서 사드린 어머니의 빨간 내복이나 내가 입던 희뿌옇고 두툼한 내복과는 다른, 타이즈나 스타킹에 가까운 모습의 얇은 내복은 일천한 두께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따뜻했다. 이름이 히트텍인가 했는데 히트 테크놀로지, 열기술 熱技術이란 이름에 걸맞았다. 무엇보다 바지 속에 입어도 예전처럼 둔하거나 걸리적거리지 않아 좋고. 그렇게 남자의 오래된 자존심은 추위와 아내의 권면을 가장한 협박 아래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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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번 주 들어 추위가 좀 수그러들면서 생겼다. 이 정도면 안 입어도 괜찮겠지 하며 내복을 벗고 출근을 했는데 아랫도리가 시려 견딜 수가 없는 것 아닌가. 불과 얼마전 지금보다 더 추웠을 때도 이렇게 춥진 않았는데 한 열흘 입던 내복을 벗으니 더 추운 것이다. 하루를 떨고 다음 날 아침 냉큼 내복을 다시 껴입고 나왔다. 그 열흘 사이에 사나이 자존심만 꺾인 게 아니라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내 몸뚱이도 급기야 항복을 하고 만 것이다.
추우면 내복을 입으면 되는 건 간단하고도 실용적인 사실이다. 실제 건강에도 좋고 난방비도 아낄 수 있으니 좋은 일이다. 그런데도 뭔 지 모르게 굴복하는 느낌이 드는 건 무엇 때문일까? 늙었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 반항이나 치기 같은 것일까? 아직도 내게 그런 게 남아있었단 말인가?
다행인가, 어리석음인가?
지금 입고 있는 내복을 언제쯤 벗을 수 있을까? 아직 꽃샘 추위도 남아 있으니 삼월이나 돼야 벗을 수 있으려나? 어쨌든 그때까지는 내복에 순종하고 살아야 할 것 같다. 늦어도 삼월초면 저 막 돼먹은 인간도 끌어내려질 것이고 그러면 몸도 마음도, 세상도 따뜻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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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내복도 나를 놓아주겠지. 아랫도리도 가벼워지겠지. 그리고 다시 겨울이 시작되면 나 스스로 히트텍을 모셔 들이겠지. 더 이상 미련스레 버티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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