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반고개 추억 48

生活力

. 生活力 젊은 시절 날건달로 살았던 아버지 맏이인 나 태어나고 먹고 살아야겠다 철공소로 목공소로 돈벌러 다녔는데 국민학교 4학년 땐가 땅골 가는 언덕배기 초가 하나 사서 헐고 당신 손으로 집 하나 지으셨는데 방 몇 개 세놓고 폐병 앓이 오래 버텼는데 돈이 늘 모자라 옥상에 뚝닥 만든 내 공부방 두꺼비집 들어오는 전기선 중간에 까서 도둑전기로 불도 켜고 전기장판도 켜주시고 똥간 바깥쪽 벽에 구멍 하나 뚫고 돌멩이로 막아 놓았다 큰 비 오면 뽑아내고 똥물을 몰래 흘려 온동네 똥냄새 칠갑을 했었다 한산도 한 갑 손톱 끝까지 태워 사흘을 피고 고기는 한달에 한번 병원비 아깝다 죽어도 병원에 안가고 버티다 제발로 걸어간 병원에서 결국 죽은 아버지 재주로 버티고 꼼수로 버티고 악으로 버티다 집 한채 달랑 남기고 ..

차랑

. 차랑 어릴적 나는 철공소집 아들이었다. 집에는 무쇠 아궁이 뚜껑이나 은맥기를 입힌 촛대 같은 쇠로 만든 살림살이가 많았다. 다른 아이들이 철사줄을 박은 썰매를 탈 때 나는 ㄱ자형강을 박은 썰매를 탔다. 구슬치기에 재주가 없어 늘 지거나 잃기 일쑤였는데 자존심이 많이 상하면 쇠구슬을 주머니에 넣고 나가 애들 구슬을 깨뜨리며 복수를 하곤 했다. 내 고향 대구에서는 볼베어링에 들어가는 그 구슬을 차랑이라고 했다. 난공불락 어떤 구슬이 덤벼도 절대 이길 수 없는 차랑 그 시절 나의 여의주였다. 220212

아치꼬치

. 아치꼬치 요즘 말로는 깍두기 아치꼬치는 일본말이라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여기저기 엇바뀜 뒤바뀜이라는데 굳이 뜻을 대자면 여기저기가 맞을 듯 세간에 떠들썩한 오징어게임 나 어릴 땐 오징어가생 가생이란 말도 일본말이네 찾아보니 전투 접전 요즘은 게임이고 그때는 일본식 전투였군 오징어가생 말고도 사다리가생 십자가생도 있었지 흙바닥에 막대기로 줄만 그으면 금새 펼쳐지던 전투 막는 편과 뚫는 편으로 나누어진 맨바닥의 유희 또는 전쟁 다리 저는 나는 언제나 이편도 저편도 아닌 이편도 저편도 있으나마나 한 아치꼬치 분명 깨끔발로 열심히 뛰어다녔는데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던 아치꼬치 격렬하게 몸 부딪히다 가끔은 자빠져 얼굴을 갈아붙이기도 하는 오징어 몸통 주변을 혼자 돌다 슬쩍 돌진해 쩐을 찍어도 점수로 쳐주지 않았던..

고방庫房의 기억

. 고방庫房의 기억 사보이극장에서 서문시장 가는 길 시장 맞은 편으로 고방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고모부와 화숙이 아버지는 늘 그곳에 있었다 밭떼기로 사 도매로 넘기고 남은 다마네기나 배추, 고추 같은 것들 한 철에 딱 한 가지씩만 찍어 선금 지르고 샀지만 고모부가 사면 다마네기는 꼭 폭락했다 한 철 벌어 일 년 살 궁리는 자주 한 철 까먹고 일 년 빚지는 꼴이 됐다 그때마다 아이만 하나씩 늘어 벌써 일곱 고모부는 쉬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배추로 그나마 몇 푼 번 화숙이 아버지 곁에서 쓴 소주만 얻어먹곤 했었다 가게는 가게인데 물건은 없고 먼지와 가난과 사각의 허방만 있던 대신동 고방들 마른 다마네기 껍데기 같던 고모부도 시퍼런 배추 겉잎 같던 화숙이 아버지도 이젠 다 메꿔져 사라졌고 그 길엔 당시에도 ..

71년, 삼거리 풍경

. 71년, 삼거리 풍경 아버지 철공소가 있던 삼거리 새길시장 가는 왼쪽 길에는 정미소가 있었고 건너편 성수네 가게 앞에는 조랑말이 끄는 구루마 서넛 늘 서있었다 말똥을 주먹처럼 쏟던 말들은 차례가 되면 쌀가마니를 억수로 싣고 비틀비틀 어디론가 떠났다 오른쪽 길을 쭉 가면 사보이극장 지나 서문시장 버스는 다니지 않아 걸어서 외가를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면소재지 같았던 직할시의 변두리 아버지는 매일 쇠를 깎고 좀 더 어린 시절 나는 그 곳을 헛도는 기계에 왼손가락 하나를 잃었다 손에 피가 철철 흐르는 나를 안고 세신의원으로 달리던 어머니 화들짝 놀라 뛰쳐오르던 점박이 조랑말 대부분 나른한 습자지 같은 삼거리의 기억은 딱 그 한 장면만 펄떡이는데 이학년때 한반이었던 도장포집 아들 성수는 그나마도 아무 기억..

반고개

반고개 삽짝에서 희주 자슥이 배꼽마당에 가생하러 가자 불러쌌다 백구 친 이발 삯은 난중에 준답니더 달아놓고 쪼차가면 이구못에서 부리 오다리 하던 아들이 하마 한테 모디 있었다 대성이 누부가 오꼬시 한 반티 머리에 이고 가고 올캐바닥 하던 가시나들 항거씩 깨끔발로 쪼차가던 저녁답이면 어무이는 쌀 팔아 밥 안치고 아부지는 돼지고기 끊어 잔차 타고 만디를 넘어 오고 동생은 탁주 한 디 새빠지게 받아왔다 구극직물 댕기던 엉가야가 돈사온 고무신을 신고 다이루 바른 정지에 가서 지렁과 지름을 한 종바리에 담아오면 버쓱 짐에 싼 밥이 달았다 뒤딴 한 귀티 쪼글씨고 앉은 까만 강새이 고기 꾸버 묵는 내미에 애가 달고 멀리 벌씨로 캄캄해져가 무서븐 당산에선 얼라들 간 빼물라꼬 문디들 어씨 망케 댕기는 거 가탔다 210307

한산도 한 모금

한산도 한 모금 연대 국문과 보내주이소 아비는 반쯤 피다 눌러놓은 한산도에 다시 불을 붙이고 아무 말이 없었다 가끔 장학금을 받을 때가 아니면 어미는 외가에서 등록금을 얻어와야했다 아비는 그저 한산도에 불만 질렀다 이 학년 여름 방학때 교통사고로 드러누워 있는 병원으로 학사경고장을 들고 아비가 왔다 난생 처음 눈물을 봤다 일 년 뒤 아비는 속절없이 세상을 떠났다 새 한산도 한 대 물고 제 발로 병원으로 가 돌아오지 못했다 서울 유학 가겠다는 아들에게 못갈 줄 알면서 내지르는 아들에게 내 목숨 몇 모금 남지 않았다 말하는 대신 한산도 꽁초만 태우던 아비 그 심정을 이제야 알듯하니 이 노릇을 어쩌면 좋을까 20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