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생진의 <바다를 본다> 바다를 본다 성산포에서는 교장도 바다를 보고 지서장도 바다를 본다 부엌으로 들어온 바다가 아내랑 나갔는데 냉큼 들어오지 않는다 다락문을 열고 먹을 것을 찾다가도 손이 풍덩 바다에 빠진다 성산포에서는 한 마리의 소도 빼놓지 않고 바다를 본다 한 마리의 들쥐가 구멍을 빠져나와 다시 구멍으..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07.11.20
[스크랩] 안도현의 <숭어회 한 접시> 숭어회 한접시 눈이 오면, 애인 없이도 싸드락싸드락 걸어갔다 오고 싶은 곳 눈발이 어깨를 치다가 등짝을 두드릴 때 오래된 책표지 같은 群山, 거기 어두운 도선장 부근 눈보라 속에 발갛게 몸 달군 포장마차 한 마리 그 더운 몸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거라 갑자기, 내 안경은 흐려지겠지만 마음은 백..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07.11.20
[스크랩] 나희덕의 <한 삽의 흙> 한 삽의 흙 밭에 가서 한 삽 깊이 떠놓고 우두커니 앉아 있다 삽날에 발굴된 낯선 흙빛, 오래 묻혀 있던 돌멩이들이 깨어나고 놀라 흩어지는 벌레들과 사금파리와 마른 뿌리들로 이루어진 말의 지층 빛에 마악 깨어난 세계가 하늘을 향해 봉긋하게 엎드려 있다 묵정밭 같은 내 정수리를 누가 저렇게 한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07.11.20
[스크랩] 문태준의 < 맨발> 맨발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07.11.20
[스크랩] 문태준의 <그맘때에는> 그맘때에는 그맘때에는 하늘에 잠자리가 사라졌다 빈손이다 하루를 만지작만지작 하였다 두 눈을 살며시 또 떠보았다 빈손이로다 완고한 비석 옆을 지나가보았다 무른 나는 金剛이라는 말을 모른다 그맘때가 올 것이다, 잠자리가 하늘에서 사라지듯 그맘때에는 나도 이곳서 사르르 풀려날 것이니 어..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07.11.20
[스크랩] 정호승의 <강변역에서> 강변역에서 강변역에서 너를 기다리다가 오늘 하루도 마지막날처럼 지나갔다 너를 기다리다가 사랑도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바람은 불고 강물은 흐르고 어느새 강변의불빛마저 꺼져버린 뒤 너를 기다리다가 열차는 또다시 내 가슴 위로 소리없이 지나갔다 우리가 만남이라고 불렀던 첫눈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07.11.20
[스크랩] 신경림의 갈대 갈대/ 신경림 언제부터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07.11.20
病에게 病에게 --- 조지훈 ---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 그 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 오네.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끌고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07.11.08
[스크랩] 우체국 계단 / 김충규 우체국 계단 / 김충규 우체국 앞의 계단에 나는 수신인 부재로 반송되어 온 엽서처럼 구겨진 채 앉아 있었다 빨간 우체통이 그 곁에 서 있었고 또 그 곁에는 늙은 자전거가 한 대 웅크려 있었다 여름의 끝이었고 단물이 다 빠져나간 바람이 싱겁게 귓불을 스치며 지나갔다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기 위하..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07.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