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책과 문화 읽기 504

물과 꿈 - 바슐라르

. 물과 꿈 '불의 정신분석'에 이어 '물과 꿈'을 읽는다. 시인이 생산한 시는 그 자신 속에 깊게 자리한 무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바슐라르의 생각. 그 무의식의 뿌리는 크게 불, 물, 흙, 공기의 네가지 원소로 대별할 수 있다는 어쩌면 황당하고 옛 그리스 철학 같은 낡은 생각에서 바슐라르의 물질적 상상력의 현상학은 출발한다. 그의 이론들은 대체로 외적 형식의 분석에 치우쳤던 문학비평의 방법을 내적, 주관적 물질성 쪽으로 옮겼다는데 큰 의미를 두는 일반적 평가처럼 비평의 방법론으로 가치가 커보인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상상력과 몽상에 기대 시를 생산하고자 하는 시인들에게는 생각만큼 효용이 커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솔직히 다른 시인의 시를 깊이 파헤치는 일이 내 시를 깊이 심는 일과..

지그문트 바우만을 읽는 시간

. 액체 근대의 저자 지그문트 바우만. 그의 생각들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방향을 잡을 수 있을까 해서 먼저 읽은 책. 결론은 실망. 역시 잔재주는 큰 재주의 방해꾼이다. 바우만 사상의 대강을 얻은 대신에 그의 저서들에 대한 껍데기를 먼저 뒤집어 쓴 느낌, 무엇보다, 책 좀 읽는다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쓴 서평이 담긴 책을 읽었다는 사실이 몹시 부끄럽다. 나역시 원칙이라는 고체를 지키지 못하고 은근슬쩍 나를 허무는 편리함과 기능주의, 상품화된 인문학의 액체서에 녹아내렸다는 느낌. 반성이라도 하게 된 걸 다해으로 생각해야 되나?

새롭게 만나는 공자 / 김기창

#새롭게_만나는_공자 새롭게 만나는 공자 주말 동안 그간 읽고있던 책을 덮고 친구의 책을 읽었다. 법학자가 쓴 고전(논어) 다시 읽기가 꽤 궁금했던 탓이다. 친구와 나는 고3때 한 반이었다. 공부를 잘했던 친구는 서울법대를 갔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 40여년 간 딱 두 번 정도를 만난 것 같다. 책을 받아보니 내가 얼추 짐작으로만 알고 있었던 친구의 이력이 표지 안쪽 첫 페이지에 적혀 있었다. 사법고시를 당연히 합격했지만 법조계로 가지않고 케임브리지 교수로, 고대로스쿨 교수로 학문을 이어가는 인생을 살고 있는 친구. 계동 근처 뒷편 어느 골목에 직접 집을 지어 살고 있는 친구. 아이들은 프랑스에 살고 있는.. 헌법학자로 알고 있는 그가 느닷없이 공자를, 논어를 말하는 책을 냈다는 소식을 페북에서 처음 봤을..

은둔기계 / 김홍중

. '어떤 시대가 오면 아마추어리즘은 소멸한다. 아마추어들은 단순히 살아남는 것에 실패할 뿐 아니라, 살아남아 있음이 미학적으로 불쾌감을 주는 방식으로 생존한다. 애호의 실체가 사심 없는 완상인지, 문화자본의 은밀한 추구였는지, 과시적 소비였는지, 아니면 자기기만이었는지에 대해 준엄한 평가가 내려지는 순간을 맞이한다.' '창조가 아니라 위로, 도덕도 유희도 아닌 견딤. 우리 시대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독자는 자기 자신이다.' - 김홍중. 중에서 3류에게 경고와 위로와 자각을 주는 글. ㅠ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날들 / 필립 톨레다노

. 오랜만의 온전한 휴일. 책상 위에 놓인 큰딸이 읽은 책을 읽는다. 어쩌면 제가 다 읽고 나를 읽으라고 내 책상에 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제목이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날들.' 썩 유쾌해보지지 않은 제목이다.^^ 저자인 필립 톨레다노는 사진작가다. 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낸 백세 가까운 아버지와의 이별 과정을 사진으로 남기고 짧은 글을 보탠, 거의 사진집에 가까운 책이다. 아버지는 단기기억상실증에 시달리며 최후의 시간을 보낸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안타까우면서도 아쉽다. 오래된 관계의 이별이란 대부분 다 그런 것이다. 나 역시 어머니가 떠난지 이제 열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쉬움은 바지가랭이끝에 매달려 툭하면 나를 잡아 당긴다. 내 큰 딸은 이제 서른셋. 우리 부부는 환갑 코앞. 나도 슬슬 떠날 시간을..

예술의 주름들 / 나희덕

. 뭔 일을 새로 벌여 통 책을 읽지 못한다. 일년에 이백 권 정도의 책을 읽었는데 일주일 동안 시집 한권도 못 읽으니 오히려 신기하다. 이게 정상이지 싶다가도 괜스레 불안하다. 일종의 중독과 금단 현상이다. 그래도 읽고싶은 책은 세상에 자꾸 나오고 목록만 쌓인다. 그 중 한 권, 이 책. 나희덕시인이 쓴 예술의 주름들. 詩가 분명히 예술일진데 내가 쓰는 詩를 예술이라 여긴 적이 없다. 내게 예술은 아직 감상의 대상일뿐 창작의 대상은 아니다. 한마디로 수준 미달이다. 나희덕시인 정도면 분명 훌륭한 예술가다. 그의 詩를 읽으며 감동받은 적이 많으니 내겐 더욱 그렇다. 그가 보는 예술은 어떤 것인지, 예술의 세계는 어떻게 이어지는지, 예술이란 무엇인지, 나도 언젠가는 예술의 경지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런지..

서머셋모음 단편집

. 오래된 책 서재를 꾸미면서 적지 않은 책들을 버렸지만 내 서가에는 여전히 오래된 책들이 제법 많이 꽂혀있다. 서머셋모음의 이 단편집도 오래된 보잘것 없는 책 중 하나다. 1997년 청목이라는 출판사에서 펴낸 문고판이다.활판인쇄본으로 글씨도 작고 무엇보다 언제 내 손에 들어왔는지, 그리고 내 손을 떠났는지 종이는 누렇게 바랬고 위에는 먼지가 켜켜이 쌓여 거무티티하다. 작년 말부터 단편소설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시와 인문서에 편중된 독서로 서사에 대한 감각이나 감동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책장을 뒤져 레이먼드커버 같은 비교적 최근 작가들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그 재미가 새삼 쏠쏠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책을 읽는다. 이 책, 서머셋모음의 단편집도 그 중 하나다. 대충 1920년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