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과의 이별
2009. 10. 20
오래된 것들은 모두 다 헤어지기가 어렵다
십년을 탄 십오년된 자동차는
시동을 끄고 어둠 속에
홀로 두고 오는 일조차 안스럽고
손잡이 끈이 간당간당한 손가방은
대신 잡은 어깨 가죽 허물이
부스럼처럼 벗겨지는 것이 속상하다
서가 한 켠의 오래된 문예지
먹 기운 사라진 비석같은 모습에
이젠 그만 놓아주어야 할 것같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문고리 언저리에 달무리처럼 내려 앉은 손때
한달에 일밀리씩 제 속을 비치는 찢어진 소파며
엉덩이 뭉게며 비빈 탓에 발갛게 단 장판이며
몇 천 개비 근심을 태웠을까 누렇게 뜬 화장실 문
온수가 잘 나오지 않는 거꾸로 타는 보일러며
이놈들과 함께 먹고 싸고 자고 싸운 십년
켜켜히 시간을 쌓아온 내 집을 비우려 하니
아! 이 가슴 막막함을 어쩌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