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차한 하루
2009. 10. 22
롤스로이스를 타보지 않아도 팔 수 있는게 광고쟁이다
5원짜리 옷핀부터 40억짜리 호화빌라까지
이십오년 동안 참 많은 물건들을 팔아 왔지
게중에는 제법 소문난 광고도 상을 받기도 한 광고도 있었어
이제는 기억조차 까무룩한 브랜드도 있고
거의 사기꾼 같은 클라이언트도 많았던 것 같아
하긴 누구를 사기꾼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
누군가 그랬지. 책 딱 한 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우리도 그랬지 않나? 책 한 권 분량도 안되는 공부를 가지고
어설픈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한데 넣고 비벼
전문가의 전략입네 하며 폼나는 사기를 쳐온 셈이잖아
세상 모든 물건을 다 팔아도 제 몸 하나는 못파는 게 광고쟁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깍는다는 말, 딱 광고쟁이한테 어울리는 말이지
아침 나절 내가 과장 때였나 신입사원으로 들어왔던 녀석이
나이가 많아 다니던 회사에서 명퇴를 당했다는 소식이 왔어
어쩌면 내가 참 질기게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것 같아
하긴 점심 먹고 의자에서 다리 뻗어 삼십분 낮잠을 자고나도
마땅히 서둘러 해야 할 일을 찾을 수 없는 내 처지를 바라보면
그야말로 눌러 붙어있는 처지이지 이미 당당하진 못한 것 같아
창 밖엔 푸른 가을 태양이 서늘하면서도 따갑게 내리 쬐고 있군
자꾸만 창 밖 거리를 바라보게 되는 건 이 자리가 편치 못한 탓 일거야
물론 궁리는 이것저것 이모저모로 하고는 있지만 속 시원한 길은 안 보여
그래도 힐끔거리는 가을이 지나 해가 기울때면 이 자리를 일어서야 할거야
갑자기 속이 쓰려 오는군. 큐란 한 알 미지근한 물로 삼켜 녀석을 달래고
허접해진 퇴물 광고쟁이를 어떻게 팔까 다시 꼼수를 더듬어 본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