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주간근무에서 야간근무로 넘어갈 때는
하루 반 정도의 휴식일이 생긴다.
수요일 저녁에 퇴근해서 목요일 하루를 온전히 쉬고 금요일 오후 늦게 출근을 한다.
이때는 보통은 미뤄둔 약속을 잡거나
가까운 친구와 모처럼 맘편히 한 잔 한다.
하지만 이번엔 아무 약속도 잡지 않았다.
피로가 쌓인 탓도 있지만 굳이 누구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택시운전수 생활 14개월.
일상의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일주일 단위로 밤낮이 바뀌고
하루 14시간을 밖에서 돌아다니니
집에 오면 잠들기 바쁘다.
TV를 안본지는 오래됐고 늘 끼고 사는
책들도 읽어내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남들 쉬는 날 일을 해야하니 경조사에
거의 가지를 못한다. 일 년 동안 딱 한 군데 갔다. 사람 도리는 살아내는 일의 후순위다.
내년에 내 딸도 시집갈 것 같은데.. 식장이 텅 빌 것 같아 한편 걱정이다.
적지 않은 모임에도 전혀 못나간다.
세 군데 모임에서 총무를 맡았었는데 모두 사퇴했다.
형편이 이렇다보니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강제로 정리가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릴적부터, 학교와 교회, 글판을 다니며,
또 사회속 몇몇 회사를 다니며 쌓여온
수많은 관계들.. 그리고 사람들..을
강제로 그어진 거리 속에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 친구는 내게 누구인가? 내게 정말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친구는 있는가?
그 모임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친지는? 후배는? 등등.
시간이 좀 더 흘러 삼 년을 채우면
지금보다는 여유를 다시 찾게 될 터.
그 때가 됐을 때, 내 곁에는 누가 남게 될까?
무엇이 남게되고 어떤 것들이 사라질까?
한 밤.
손님도 없고 차안에 음악만 흐르는 시간 속을
달리다보면 이런 생각이 저절로 맴돈다.
지나간 시절, 후회스럽던 수 많은 순간들과 함께..
부작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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