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공부하고 있으니 당연히 시론, 시작법 책을 제법 여러 권 읽었다. 국내의 알만한 시인들이 쓴 시 작법은 물론 힘 닿는 대로 해외 시인들의 책도 몇 권 읽었다. 지금의 어설픈 시 쓰기도 어쩌면 그분들의 가르침 언저리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 읽은 오규원의 시작법은 부끄럽지만 최근에 발견해서 읽었다. 권혁웅의 <현대시작법>과 조동범의 <묘사>를 읽다가 그분들이 인용한 텍스트로 오규원시인의 책이 많이 인용된 것을 보고 찾아서 읽은 것이다. 어디가서 오래 시공부를 해왔다고 말하기 좀 부끄러운 노릇이라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책을 덮으면서 그간 읽었던 시 공부 책 중 가장 정리가 잘된 텍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창작 이론을 주제별로 세분해서 실질적인 사례를 충분히 들며 설명해주는 방식은 물론 나같이 아직도 습작기에 머물고 있는 시인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나 오해 등에 대해 비교적 신랄한 비판을 해준 것도 아프지만 도움이 됐다. 그리고 혹시 내가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시를 가르쳐야 할 일이 있다면 이 책에 기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막연한 감각으로 알고 있던 시 이론이 어느 정도 정리해준 것과 더불어 저자는 내게 '시를 날탕으로 쓰지 말라'고 시종일관 질책했다. 시는 혼자만의 감상 따위를 발산하는 싸구려 예술이 아니라고 말했다. 시는 누군가에게(내 경우 몇 안되는 독자에게) 내가 깨달았거나 발견한 의미있는 의미나 인상을 의미있게 전달하는 지난한 작업이므로 주절주절 아무렇게나 한 편 시라고 뱉어내서는 안된다고도 말했다. 시는 엄중한 예술이므로 대상의 진면목 발견할 수 있는 안목을 반드시 갖추어야하며 , 거기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성장시키는 노력을 해야한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해내는 일 또한 단순한 감각적 재주, 글 재주만으로 써낼 수는 없는 것, 안되는 것이라 말한다.
오래 동안 많은 친구들이 내가 쓴 글들을 보고 '그만 좀 징징대라'고 말했다. 현실에 그만 투덜대고 오히려 희망과 새로운 가치를 노래하라고도 했다. 그때마다 내 재능의 부족함과 나를 지배하는 삶과 정서의 한계를 들어 변명했었다. 오규원은 그런 건 시가 아니라고 엄정하게 말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시적 소재를 발견하고 새로운 의미를 찾고 뺀질한 묘사를 하고 있지만 결국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이르면 밑천이 드러난다는 사실이 문제라는 것을 이 책은 내게 말한다. 첫 문장을 쓸 때 마음 속에 세웠던 방향은 그 시적 주제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서 시를 완성시키는 과정에서 어긋나기 일쑤였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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