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책과 문화 읽기

여행의 이유 /김영하

취몽인 2019. 12. 10. 12:19




  여행의 이유에 대해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게 여행은 늘 떠나고 싶지만 쉽게 떠날 수 없는 애매한 동경 같은 것이었다. 지금도 훌쩍 차를 몰고 가까운 포구로 바다를 보러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가려면 못갈 것도 없다. 회사는 조퇴를 하고 자유로를 달려 김포, 강화로 향하면 삼십분이면 닿을 수 있다. 하지만 떠나지 않는다. 하고 싶은 거 어떻게 다하고 사나? 평생 나를 선 자리에 붙들어 매는 멍에 같은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서른 즈음, 아내와의 관계가 불편했던 시절이 있었다. 자주 싸웠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괴로운 적이 많았다. 퇴근 후 술을 마시다 대책 없이 동해 바다로 가버리곤 했었다. 물론 다음날 회사는 결근이고. 그건 여행이 아니라 도피였다 . 돌아오는 길은 엄청난 스트레스가 온몸에 달려 있었다. 죽고 싶을 정도로.. 그래도 돌아와야 했다. 살아야하니까.그 동해바다는 그 후로도 늘 나를 유혹했다. 다 관두고 어서 오라고. 하지만 가지 못했다. 그저 가고싶다만 남긴 채.


  작가는 여행이 소설과 비슷하다고 한다. 딛고 선 현실이 아닌 곳에서의 삶이란 점에서, 잠깐의 재미 또는 일탈의 시간을 갖지만 반드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점에서 소설과 여행은 닮았다고. 수긍이 가는 생각이다. 일상을 던져두고 오롯이 헐벗은 한 개인이 되어 낯선 곳에 놓이는 삶. 특별한 관계도, 의무도 없는 자유의 시공간. 그 곳에서 느끼는 단독자로서의 나를 발견하고 그의 걸음을 걷는 일. 그것이 여행의 미덕이다. 저자의 경험이나 말처럼 그 단독자로서의 시간이 관계에 지친 영혼을 씻어내고 새롭게 현실을 살 동력을 부여한다.


  그러니 여행을 자주 가야 한다. 그런데 자주 못간다. 그래서 지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TV를 켜고 'Armchair traveler / 방구석 여행자' 노릇이라도 열심히 해야 하나? 그건 또 아니다. 용기가 필요하다. 나를 리프레쉬 하기 위해 현재를 다소 희생시킬 용기가 필요하다.


  우선 용기를 키우자. 그리고 여행을 떠나자.


  "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만 남곤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더 명료해진다.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