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책과 문화 읽기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이윤기

취몽인 2020. 1. 28. 14:31

 

그리스인 조르바. 장미의 이름. 그리스 로마신화의 번역가이자

전방위 작가라 불리는 이윤기선생.

 

책줄이나 읽는다는 사람은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 중에 번역가의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어릴적 읽은 이솝우화에서부터 최근의 들뢰즈까지 우리는 그리고 나는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수많은 텍스트들을 번역가들의 수고에 기대 읽고 있다.

십 수 년 전 작고하신 지를 이 책에서 알게된 이윤기선생 또한 내게 큰 은혜를 베푼 번역가이다. 위에서 말한 '조르바'를 읽고 내 삶은 얼마나 꿈틀거렸는지 모른다. 움베르토 에코의 책을 읽으며 또 얼마나 머릿속이 쭈볏댔던가. 그외에도 내 인생을 확장해준 여러 책을 선생의 번역에 힘입어 읽었을 것이다.

 

번역은 어려운 일이다. 외국어에 젬병인 주제이니 원서로 읽고싶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겐 언감생신이다. 그래도 책 욕심은 있으니 결국 번역서를 읽을 수 밖에 없다. 번역서를 읽다보면 번번히 읽어내는데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

가장 심한 쟝르는 역시 詩인데 온갖 수사와 감각적 묘사가 집적된 그것들은 번역이란 과정을 거치면서 그 시가 태어난 모국어만의 맛을 잃어버리가 십상이다. 안그래도 압축 정제된 언어로 이루어진 게 詩일진데 본래 언어의 정서에서까지 이탈한 상태의 우리 글로 읽으면 과연 이게 원래의 詩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늘 들었다.

그 다음은 인문철학서들이다. 하이데거나 라캉, 푸코 같은 책들은 분명 가소로운 내 수준으로는 이론의 깊이를 따라가기 힘든 것이 당연할 터이다. 하지만 번번히 좌절하는 도전속에서 나는 번역자의 친절함에 대해 늘 아쉬움을 느끼곤 했다. 가끔 너무나 잘 번역된 책을 접할 때마다 그 아쉬움은 더 컸다.

어학만 잘하는 번역자가 아니라 책이 속한 분야의 전문가이면서 문학적 표현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 번역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그때마다 들었다. 따라서 번역자는 저자 못지 않은 역량을 필요로 하며 어쩌면 그 보다 더 고수일 필요가 있지않나 생각한다.

 

이윤기선생이 그런 사람이다. 소설을 쓰는 작가이면서 본인이 번역하는 작품 또한 스스로의 작품 못지않은 작품으로 여긴다.

문장 하나에 전력을 다하는 태도는 우리 말을 소중히 다루는 어느 작가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경직되지 않고 유연하다.

그러기가 쉽지 않거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재기발랄한 목소리로 말하는 선생의 가르침을 읽었다. 조르바를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는 생각과 책 속에서 선생이 권한 두 권의 책이 숙제로 남았다.

트루니에의 '짧은 글 긴 침묵'과 김화영의 '내 청춘의 고향 프로방스'가 그 행복한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