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책과 문화 읽기

연필로 쓰기 / 김훈

취몽인 2020. 1. 21. 17:08

 

몇 달 전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밀려 읽지 못했던 김훈의 이 책을 이제야 읽는다. 괜히 미안한 마음으로. 그런데 김훈의 나이가 70이란다. 김훈이라 부르면 안된다. 김훈선생님이다.

 

책은 재미있다. 유익하다. 그리고 요즘 부쩍 많이 드는 생각이지만 저자가 부럽다.

김훈은 소설가다. 하지만 책 속의 김훈은 시인이고 문화학자이고 역사학자이다. 고문학자이고 맛칼럼리스트이고 에세이스트다. 한 권의 책속에 이처럼 다양한 안목을 재미있으면서도 마음을 진중하게 하는 글들을 담아낼 수 있는 저자를 어찌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요즘 잘 팔리는 많은 책들과는 달리 다른 책들의 내용을 툭 잘라붙여 내 글의 허약함을 가리는 뻔뻔한 인용이 이 책에는 별로 없다. 물론 인용이 아주 없다는 말은 아니다. 저자의 인용은 한 문장을 쓰기 위해 그의 기억 속에 있는 것이든, 서가에 꽂힌 수 많은 책들 어딘가에 있던 것이든, 그 순간에 어딘가를 뒤져 그 문장을 살아있게 만들고 믿음직하게 만드는 리얼리티의 인용들이다. 그 박식 또는 정보 관리 능력 또한 부럽다.

 

책의 주제는 여기저기로 떠돈다. 옛 서울 골목길을 서성거리는가 하면 일산 호숫가 노인들의 장기판을 기웃거리고 울산 반구대의 고래를 생각하다 백석과 함께 대동강변에서 냉면을 먹기도 한다. 둥근 공을 온 마음으로 차다가 옛 친구들과 소주를 마시고 맨 뒤에선 한강을 거슬러 올라 내가 근무하는 파주까지 와서 글을 마친다.

사무실 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오두산이 100미터 조금 넘는다는 것과 그 앞 강변 갈대밭이 산남습지라는 사실, 그 위를 끼룩끼룩 나는 겨울새들이 쇠기러기와 청둥오리라는 것도 덕분에 알았다. 책 속에서 저자는 새에 대해 잘모른다고, 누가 아는 사람이 있으면 알려달라 부탁을 했는데 이 책을 읽고 있는 이 때쯤이면 어쩌면 혼자 도서관을 뒤져 캄차카반도와 산남습지를 오가는 철새의 생태에 대한 학습을 이미 끝냈을지 모른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하면, 그가 이렇게 썼기 때문이다.

 

'가보지 못하고 지도와 기록을 들여다보면서 쓰고 있으니, 말이 느낌에 닿지 못하고 겉돈다.'

 

이 말이 김훈 문학의 문장의 힘이라 생각한다. 서재에 박혀 책을 읽으며 얻는 느낌보다는 자전거를 끌고 삼남을 헤매거나 일산 호수공원 할머니들 곁에 쭈그리고 앉아 그들의 입말을 메모하는 느낌을 찾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의 문장들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나는 그간 김훈의 소설을 별로 읽지 않았다. 조만간 짧은 걸로 골라 읽어볼 생각이다. 그게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의 예의라 생각된다.

 

전자책을 읽을 때 좋은 문장을 메모로 남기기 힘들다는 점은 큰 약점이다. 일천한 기억력은 책을 덮는 순간 수많은 보석들을 어둠속으로 던져 버린다. 구덩이 언저리에 겨우 남은 몇 마디를 아래에 남겨둔다.

 

'늙기는 동사가 아니라 형용사다.'

 

'이제는 읽어 무엇을 아는 일보다

세상을 차분히 바라보고 느끼는 삶을 살아야겠다.'

 

'李落祠' 李가 죽다.

주어 하나 동사 하나로 이순신의 죽음을 규정한,

너무나 명징한 사당에 대해..

 

'사람과 메밀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

그 거리는 서늘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