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추천 책 다시 읽기 시리즈..
무위당 장일순의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1928년 강원도 원주태생. 서울대 미학과 1회 졸업생. 평생 이렇다 할 경력없음. 다만 알만한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사람. 김지하, 김민기 등 70년대 운동권의 정신적 메카가 원주였다면, 바로 그 '원주그룹'의 핵이었던 사람. 70년대 말부터 정치투쟁이 아닌 생활운동을 통해 사회운동을 이끌었고, 생명운동단체인 '한살림운동'을 태동시킨 장본인.
1991년 시사저널에 실린 선생에 대한 소개 글이다.
아래는 김지하가 선생에 대해 쓴 시 한 편이다.
하는 일 없이 안하는 일 없으시고
달통하여 늘 한가하시며 엎드려 머리 숙여
밑으로 밑으로만 기시어 드디어는
한포기 산속 난초가 되신 선생님
출옥한 뒤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록 사람자취 끊어진 헐벗은 산등성이
사철 그늘진 골짝에 엎드려 기며 살더라도
바위틈 산란 한포기 품은 은은한 향기는
장바닥 뒷골목 시궁창 그려 하냥 설레노니
바람이 와 살랑거리거든 인색치 말고
먼 곳에라도 바람따라 마저 그 향기 흩으라.
- 김지하 <말씀>
책 속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선생의 말이다.
하나님이 내 안에 있고
또 내가 하나님 안에 있다.
사랑의 관계에 있어서는 너와 나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라고 하는 관계, 동체라고 하는 관계, 無我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
원래 불교도였다 카톨릭신자로 평생을 산 선생은 종교의 벽을 나무라셨다. '일체는 하나의 관계 속에 있다'는 그의 생각은 불교, 노자의 도가, 유가, 동학사상, 기독교를 넘나들고 관통한다.
一微塵中 含十方
티끌 하나에 우주가 들어있다.
그 광대하면서 치밀한 생명의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한살림생명공동체'를 오래 이끌었다. 이 생명운동의 영향을 받아 김지하의 변신 또는 변절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커보인다.
선생은 평생 글을 남기지 않았다 한다. 이 책 또한 각종 강연이나 대담을 정리하여 책으로 묶은 것이다. 책을 읽고 난을 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역할을 한 사람이 글만은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 참 낯설다. 글이 그리 대단치 않다 여긴 것일까? 아마 엄혹한 독재 시절 집요한 사찰들을 겪으며 뭔가 기록을 남기는 일에 대한 부담이 있었던 탓으로도 보인다. 실재 선생은 누군가를 만나도 명함을 주고받지 않았다고 스스로 말한다. 상대에게 자신으로 인한 피해를 입힐지 모른다는 이유로..
책은 지루하다. 비슷한 내용의 반복이다. 그 반복이 어쩌면 선생의 삶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넓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뚜렷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거듭 말하는, 확고한 철학과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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