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정동에서 시 공부할 때 김경주시인의 추천으로 처음 알게된 '파스칼 키냐르'. 그리고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그간 몇 번 읽었는데 그때마다 머리가 몽롱해졌던 기억이 있다.책이 얇아 손에 쥐면 금새 다 읽곤 했었는데 오늘은 작정하고 무지근하게 읽었다.
기원에 다다를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 불안과 그에서 파생된 욕망, 언어의 한계를 도무지 따라 할 수 없을 표현으로 말하고 있는 파스칼 키냐르. 본인은 소설가이면서 언어는 詩를 통해 완성된다고 말하는 사람.
네 번째 읽어도 구름 속 목소리를 듣는 듯 똑바로 들을 수 없다.
그래도 어렴풋이나마 무슨 소리인지는 느낄 수 있으니 그것이 그가 말한 침묵의 목소리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글을 쓰는 일에 대한 절박의 정도 또는 깊이의 차이로 인한 이해의 한계인지도 모를 일이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의 절박함을 저자는 집요하게 설명하지만 내 혀끝은 아직 무디기만 한 탓에 그 안타까움에 공감하지 못한다.
그저 몇 구절 옮겨 두고 얼마간 뒤에 다시 읽어보기로 한다.
내 혀에도 뭔가가 맴돌기를 기다리며.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은 언어가 우리 내면의 반사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인간은 눈으로 보듯이 입으로 말하는 동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내가 글을 썼던 이유는 글만이 침묵을 지키며 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말을 거부하며 말하기, 말없이 말하기, 길목에 지켜서서 결여된 단어를 기다리기, 독서하기, 글쓰기, 이 모두가 동일한 것이다. 그 이유는 상실이 피난처였던 까닭이다.'
'모든 파롤parole은 두 가지 이유에서 불완전하다. 첫째, 파롤은 어느 때건 존재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언어는 습득된 것이므로). 둘째, 지시 대상은 기호로서 충족되지 않는다(기호는 언어이다). 어떤 이름도 그 대상을 지시하기에 꼭 들어맞지 않는다. 언어에는 무엇인가가 부족하다. 그래서 언어에서 배제된 무엇이 파롤로 침투해 들어갈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해 파롤은 고통을 겪는다, 그 무엇이 이 단어이다.'
'시, 되찾은 단어, 그것은 이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하며, 어떤 이미지 뒤에나 숨어 있게 마련인 전달 불가능한 이미지를 다시 나타나게 하며, 꼭 들어맞는 단어를 떠올려 빈칸을 채우고, 언어가 메워버려 늘 지나치게 등한시된 화덕에 대한 그리움을 되살리고, 은유의 내부에서 실행 중인 단락을 재현하는 언어이다.'
끝으로 생각해보니 내 혀끝에도 맴도는 이름이 있긴 하다
죈느의 혀끝에 맴돌던 이름, '아이드비크 드 엘' 처럼 한동안 내 혀끝에 맴돌았던, 그리고 또 사라져버려 억지로 찾아낸 이름, '레이몬드 카바'. 이건 그저 기억력의 부실일 뿐이지만 괜히 위안으로 삼는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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