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詩 읽기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 안도현

취몽인 2020. 8. 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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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이제 예순, 예천에 자리 잡았다 하더군.
아직도 그리 외로워 보이진 않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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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

내가 그동안 이 세사에 한 일이 있다면
소낙비같이 허둥대며 뛰어다닌 일
그리하여 세상의 바짓가랑이에 흙탕물 튀게 한 일
씨발, 세상의 입에서 욕 튀어나오게 한 일
쓰레기 봉투로도 써먹지 못하고
물 한 동이 퍼 담을 수 없는 몸, 그 무게 불린 일

병산서원 만대루 마룻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와이셔츠 단추 다섯 개를 풀자,
곧바로 반성된다

때때로 울컥, 가슴을 치미는 것 때문에
흐르는 강물 위에 돌을 던지던 시절은 갔다

시절은 갔다, 라고 쓸 때
그때가 바야흐르 마흔 살이다
바람이 겨드랑이 털을 가지고 놀게 내버려두고
꾸역꾸역 나한테 명함 건넨 자들의 이름을 모두 삭제하고싶다

나에게는
나에게는 이제 외로운 일 좀 있어도 좋겠다

-안도현. .현대문학북스.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