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2022습작

유월

취몽인 2022. 7. 2. 14:30
.

유월


*
친구

어림도 없는 시애틀에서
친구가 왔습니다.

멀리서 온 것 만큼
먼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세월이 그냥 가는 건 아니었고
소주는 여전히 무책임 했습니다.

판단이란 건
다 틀렸더군요.

*

사람을 오래 만나면
다음 하루는 힘들다.

예의는 체력을 먹고 차려진다.

*

잘 지낸다.

큰 근심도, 대단히 아프지도 않고
혼자서 잘 지낸다.

보고싶은 사람은
오래 참다가 간신히 보고
그리고 후회하며 잘 지낸다.

빈 방에
혼자 앉아
잘 지낸다, 스스로에게 소식을 전하며
나도 잘 지낸다.

*

오늘은 아무 일도 없는 날

시집 한권 내고 나니
뚝 끊어진 詩

아쉽진 않아

사람 마음 다 거기서 거기
슬픔은 지난 세월 속에 맺혀 있으니

또 언제고
스멀스멀 기어 나올 테니

*

부모님 두 분
인천 앞바다로 떠나신 뒤론
비만 오면 안부가 들린다

걸어서 오지 못하는 길
하늘로 올랐다
비에 실려 들르시는 것 같다

아주 잠깐,
창밖을 기웃거리곤
금세 떠나시는 것 같다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

버스를 타러
넉넉한 언니 하나
풍덩풍덩 뛰어 온다.

*

그럭저럭 밥 먹고 삽니다.

안부 묻는 이들에게 전하는 내 답이다.

사실은 밥 만 먹으려고 애쓰고 삽니다.

*

때로는 붙어있는 것만으로도 소용은 있다.
덜렁거리는 앞니 여섯 개,
국숫발 한 줄기도 못자르는 형편이지만
없으면 바지 지퍼 열고 다니는 꼴 되니..

*

요즘 관심 셋.

1. 오늘 운동을 할 것인가?
2. J는 오늘도 당구를 치자 할 것인가?
3. 내가 쓰는 게 에세이가 맞나?

지금 고민 셋.

1. 내일 도시락을 쌀 것인가?
2. 바슐라르를 읽을까? 피카르트를 읽을까?
3. 머리 위 모기 한 놈 어찌 해치울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치명적 생각

1. 넌 왜 도대체 보청기 팔 고민을 안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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