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속도 / 이원규 속도 / 이원규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는 인간들의 동화책에서만 나온다 만약 그들이 바다에서 경주를 한다면? 미안하지만 이마저 인간의 생각일 뿐 그들은 서로 마주친 적도 없다 비닐하우스 출신의 딸기를 먹으며 생각한다 왜 백 미터 늦게 달리기는 없을까 만약 느티나무가 출전한다면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5.12.10
[스크랩]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5.11.16
[스크랩] 기관차를 위하여 / 안도현 기관차를 위하여 / 안도현 기관차야, 스스로 너는 힘을 내 달린다고 생각하겠지 하찮은 일에서부터 세상을 움직이는 큰일까지 혼자 힘으로는 될 수 없는 게 너무 많다는 것을 모르고 기관사가 타고 서울역에서 출발하기만 하면 어디든 닿을 수 있다고 너는 생각하겠지 그래서 떠나기도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5.11.16
[스크랩] 노래하는 화살촉 / 최승호 노래하는 화살촉 / 최승호 고대(古代)의 소리들을 모은, 쇠에도 녹 푸른, 진흙의 주름살이 느껴지는 산성(山城)박물관에서, 진흙나팔과 구리말방울과 요령의 혀를 관음(觀音)한다. 혀가 떨어지고, 말대가리가 떨어지고, 연꽃에 앉아 피리 불던 관음보살이 확대경에 들이댄 눈안 속에 부식..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5.11.16
[스크랩] 지문 외 / 권혁웅 지문 / 권혁웅 네가 만질 때마다 내 몸에선 회오리바람이 인다 온몸의 돌기들이 초 여름 도움닫기하는 담쟁이처럼 일제히 네게로 건너뛴다 내 손등에 돋은 엽맥(葉脈)은 구석구석을 훑는 네 손의 기억, 혹은 구불구불 흘러간 네 손의 사본이다 이 모래땅을 달구는 대류의 행로를 기록하느..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5.11.16
초가을 / 김용택 초가을 / 김용택 산 아래 동네가 참 좋습니다 벼 익은 논에 해 지는 모습도 그렇고 강가에 풀색도 참 곱습니다 나는 지금 해가 지는 초가을 소슬바람 부는 산 아래 서 있답니다 산 아래에서 산 보며 두 손 편하게 내려놓으니 맘이 이리 소슬하네요 초가을에는 지는 햇살들이 발광하는 서쪽..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5.09.01
별/김태형 -별/김태형- 다 저문 석양 앞에 겨우 무릎을 대고 앉아 있다 내가 갈 수 없는 저곳에서 저녁별이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갈색 염소와 카자흐 사내의 눈빛을 닮은 양들이 작고 둥근 똥을 싸며 밤하늘을 지나간다 은하수가 저렇게 흘러간다 종일 물 한 모금만으로도 배고프지 않았는데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5.08.19
-비밀 정원/배옥주- -비밀 정원/배옥주- 정신과 의사 와이는 가발을 쓰고 있다 그가 머리를 긁적일 때마다 나는 그의 안으로 들어간다 가발 속에서 쟈스민 꽃이 피고 날개 꺾인 새 한 마리가 마들렌을 쪼아 먹는다 뜨거운 아스파라거스 향이 기억을 재생하는 순간 나는 탁자 위의 찻잔을 떨어트린다 정원 끝..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5.08.11
찔레꽃 /송찬호 찔레꽃 /송찬호 그 해 봄 결혼식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숲에 가보라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인데,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 흘렸겠다 나는 기..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5.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