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모카 커피를 마시며 / 최하림 모카 커피를 마시며 / 최하림 이마 넓은 가을이 찾아오면 우리 마음은 둥글어진다 거년에 입다 둔 무명으로 갈아입고 식탁에 앉아 있으려니 보이지 않게 먼지들이 국화문 벽지에 쌓인다 아내가 모카 커피를 타가지고 오는 소리 들린다 모카 향내는 색다르다 아내는 향내를 조금 쓰게 타..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4.10.02
백미러 / 함민복 백미러 / 함민복 어께 위에서 도끼날이 번쩍 햇살을 찍는다 찍힌 하늘 속으로 돼지 비명이 길게 빨려 들어간다 그가 쓰러졌다 달려오던 트럭 백미러에 머리를 부딪쳐 앞으로 가기 위해 뒤를 돌아보게 하는 그가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중환자실에서 백미러는 자꾸 도끼날이 되었다 이..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4.09.17
[스크랩] 친정 / 조정숙 친정 / 조정숙 나 가끔 친정으로 돌아가면 금세 엄마의 어린 딸이 되어 먼 여행에서 돌아온 것처럼 몸도 마음도 녹신녹신해져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한 일들 그만 까마득해지고 길을 가다 지나쳐 만난 사람처럼 남편 얼굴도 서먹서먹해져서 엄마 손에서 익은 물김치 호록호록 떠먹어가며..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4.09.11
도미노 놀이 외 2편 / 이병철 <도미노 놀이> 공사장에서 우리는 무슨 냄새를 맡고 있었다 개들이 짝짓기하는 냄새야 아니야 날지 못하는 새의 똥냄새야 죽은 사람 냄새야, 시멘트 먼지 속으로 우리는 코를 킁킁거렸다 죽은 사람 냄새는 슬프다 슬픈 게 뭔지 어떻게 알아? 그건 아직 배우지 않았잖아 철근 위로 어..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4.02.17
[스크랩] 2013 김유정 신인문학상 시 당선작 / 이병철 [2013 김유정 신인문학상 시 당선작] 유혈목이의 책장 / 이병철 당신은 풀잎 위에 누워 돌을 떨어뜨리고 있었어요 나 는 당신 귀밑머리에 매달린 하얀 박쥐들을 떼어냈고요 우리의 책은 폭설을 쏟아내고 있었지요 마른 혀도 꽃이 될 수 있을까요 그때 바람이 입 속으로 들어왔어요 바람이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3.10.16
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 기형도 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 기형도 가라, 어느덧 황혼이다 살아 있음도 살아 있지 않음도 이제는 용서할 때 구름이여, 지우다 만 어느 창백한 생애여 서럽지 않구나 어차피 우린 잠시 늦게 타다 푸시시 꺼질 몇 점 노을이었다 이제는 남은 햇빛 두어 폭마저 밤의 굵은 타래에 참혹히 감겨들..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3.09.11
[스크랩] 아내는 더 낮은 음역에서 산다 –박형권- 아내는 더 낮은 음역에서 산다 &#8211;박형권- 아침 밥상에 올라오던 우유가 한 달째 뚝 끊어져 집에 돈 떨어졌구나 싶었던 그날도 집 앞에는 낡은 오토바이 한 대 묵묵히 서 있었다 타이어는 뼛속까지 닳았고 칠이 벗겨져 검버섯 같았다 고단한 노년 같은 그것이 뒷심은 있어 새벽 네 시..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3.09.04
단추를 채우면서 / 천양희 단추를 채우면서 (천양희)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누구에게나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3.09.02
반가사유/류 근 반가사유/류 근- 다시 연애하게 되면 그땐 술집 여자하고나 눈 맞아야지 함석 간판 아래 쪼그려 앉아 빗물로 동그라미 그리는 여자와 어디로도 함부로 팔려 가지 않는 여자와 애인 생겨도 전화번호 바꾸지 않는 여자와 나이롱 커튼 같은 헝겊으로 원피스 차려입은 여자와 현실도 미래도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3.06.16
[스크랩] 적막 소리 / 문인수 적막 소리 / 문인수 적막도 산천에 들어 있어 소리를 내는 것이겠다. 적막도 복받치는 것 넘치느라 소리를 내는 것이겠다. 새소리 매미소리 하염없는 물소리, 무슨 날도 아닌데 산소엘 와서 저 소리들 시끄럽다, 거역하지 않는 것은 내가 본래 적막이었고 지금 다시 적막 속으로 계..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2.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