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스웨터/이민하 -붉은 스웨터/이민하- 한 올만 당기면 풀어질 듯 입을 막고 있어서 우리는 얼굴까지 빨개졌다 몸속에 둔 실마리를 들키지 않을 것처럼 가족과 이웃과 동료들에 엮여서 두껍고 따뜻하고 촘촘한 사람이 되었지만 손가락이 닿으면 파르르 떨리는 스웨터의 물결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손..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5.07.28
만술아비의 축문(祝文) / 박목월 만술아비의 축문(祝文) / 박목월 아배요 아배요 내 눈이 티눈인 걸 ... 아배도 알지러요. 등잔불도 없는 제사상에 축문이 당한기요. 눌러 눌러 소금에 밥이나 많이 묵고 가이소. 윤사월 보릿고개 아배도 알지러요. 간고등어 한 손이믄 아배 소원 풀어들이련만 저승길 배고플라요. 소금에 밥..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5.07.03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신현림-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신현림- 낡은 노트가 책장에서 떨어졌다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 나폴레옹의 이 말은 십 년 동안 내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송곳이었다 지난 생의 노트를 북북 찢고 어두운 벌판을 오래 떠돌았다 계속 흘러내리는 괴로운 기억의 계단..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5.06.22
[스크랩] 나는 삼류가 좋다 / 김인자 나는 삼류가 좋다 / 김인자 이제 나는 삼류라는 걸 들켜도 좋을 나이가 되었다. 아니 나는 자진해 손들고 나온 삼류다. 젊은 날 일류를 고집해 온 건 오직 삼류가 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더러는 삼류 하면 인생의 변두리만을 떠올리지만 '당치 않는 말씀'. 일류를 거쳐 삼류에 이른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5.05.28
슬픔 슬픔 / 이시영 김포에서갓 올라온 햇감자들이 방화시장 사거리 난전에서 '금이천원'이라는 가격표가 삐뚜루 박힌 플라스틱 바가지에 담겨 아직 덜 여문 머리통을 들이받으며 저희끼리 찧고 까불고 좋아하다가 "저런 오사럴 놈들, 가만히 좀 있덜 못혀!" 하는 할머니의 역정에 금세 풀이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5.05.20
-화투(花鬪)/최정례- -화투(花鬪)/최정례- 슬레이트 처마 끝에서 빗방울이 뚝 또 뚝 떨어지구요 창에 기울은 오동꽃이 덩달아 지네요 종일 추녀물에 마당이 파이는 소리 나는 차배달 왔다가 아저씨와 화투를 치는데요 아저씨 화투는 건성이고 내 짧은 치마만 쳐다보네요 청단이고 홍단이고 다 내주지만 나는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5.03.05
애인들은 쪽,쪽, 소리를 낸다 / 이하석 애인들은 쪽,쪽, 소리를 낸다 / 이하석 바다다슬기들은 민물에 삶아진 몸들을 바닷가 플라스틱 함지박에 누인다. 노란 타월을 쓴 아낙네는 밤새 바다다슬기들의 꽁무니를 뻰치로 절단했다. 사랑하는 남녀가 바다다슬기 한 봉지를 3백 원에 사선 다정하게 마주보며 먹기 시작한다. 다..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5.03.03
[스크랩] 아름다운 도반 / 이화은 아름다운 도반 / 이화은 눈 내린 산길 혼자 걷다 보니 앞서 간 짐승의 발자욱도 반가워 그 발자욱 열심히 따라갑니다 그 발자욱 받아 안으려 어젯밤 이 산 속엔 저 혼자 눈이 내리고 외롭게 걸어간 길 화선지에 핀 붓꽃만 같습니다 까닭없이 마음 울컥해 그 꽃발자욱 꺽어가고 싶습니다 짐..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5.03.03
-그곳에서 그곳으로/이제니- -그곳에서 그곳으로/이제니- 후회하지 않기로 하면서 후회한다. 눈 어두워 보지 못했던 것을 보면서. 다시 보면서. 나무가 있고. 거리가 있고. 벤치가 있고. 공허가 있고. 어둠이 있고. 고양이가 있고. 바람이 있고. 구름이 있고. 들판이 있고. 묘 비가 있고. 꽃이 있고. 시가 있고. 눈물이 있..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5.02.05
신발 베개 /유종인 신발 베개 /유종인 1 다리가 아팠다 숲길에는 버력돌이 닳고 닳은 이마를 보여주어도 나는 한숨 고요의 단청같은 낮잠을 얻기로, 걸어온, 신발 밑창을 서로 대면하듯 맞붙여 베고는 귀에 걸리는 냄새의 야사를 열 개의 발가락보다 더 많이 귓바퀴에 걸어보는 것인데 2 멀리 당신이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5.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