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 2210

게 눈 속의 연꽃 /황지우

. 인천으로 가는 젊은 성자들 전철은 사람을 싣고 서울로 오지만 빈 전철은 사상을 싣고 인천으로 간다 盲人 父子가 내 主를 가까이 를 부르며 내게 가까이 온다 무슨 일이 잔뜩 임박해 있는 우중충하고 무거운 하늘 아래 안양천 뱀풀들이 멀리 하양 아파트 지대로 기어가고 버림받고 더러운 모든 것들이 신성하다 나는 연락하러 그곳에 간다 -황지우 문지. 1990 -------------------------------------------- 칠순이 된 황지우 시인은 이제 시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누가 ‘왜 시를 쓰지 않느냐?” 물었더니 ‘시는 젊은 사람들이나 쓰는 것이지.’ 라고 답했다 한다. 1990년, 시인은 서른 아홉, 시는 그 무렵에 쓰는 것이 맞는지 모른다. 나란히 두고 읽는 김소연의 시집 그녀의 나이..

부르디외와 한국사회

. 가난한 자들이 왜 부자들의 정책을 지지하는가? 이 오래 되고 답답하기 그지 없는 질문에 대한 답을 부르디외로부터 어느 정도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계급사회 속에 살고 있으며 그 계급은 더욱 굳건하게 나눠지고 단단하게 지켜지고 있다. 그 힘은 과거에는 자본이나 정치의 독점으로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났으나 지금은 그 독점 세력들의 윤곽이 희미해졌을 뿐 아니라 인식하지도 못하는 차원의 자동화 시스템적 권력이 되었다. 그들은 보이지 않게 지배하고 착취하며, 우리는 스스로 만족하다 세뇌 당한채 지배당하고 착취 당하고 있다. 아비투스는 수렴과 지움을 확대 재생산하며 계급의 격차를 보이지 않게 공고히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웃으며 죽고 있는 셈이다. 가난한 자는 스스로 살만한 자라 여기며 조금만 더 상승하면..

감히, 아름다움

. 감히, 아름다움 아름다운 책을 만났다. 페이스북 어느 친구가 언급한 책인데, 제목이 나를 사로잡았고 바로 주문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막상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지면 막연하다. 관념이어서 그런가?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감동? 시각적 호사? 책을 덮을 때 스스로 답을 적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음악가는 어떤 때에 일어나는 시심을 아름다움일거라 말한다. 그 때는 풍경 앞일 수도 있고 어떤 상황 속일 수도 있지만 대체로 슬프고 대책 없는 약동이 일어나는 때라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그에게는 어떤 것이 스러져가는 沒의 순간이 그 때라는군. 내게 아름다움이 격동했던 때는 언제인가? 요즘 같이 산등성이에 연두가 천천히 차오른 때. 하조대 바위틈으로 짙푸른 파도가 하얗게 부숴질 때, 택시 운전하던 ..

가장 아름다운 괴물이 저 자신을 괴롭힌다

. 혼돈의 감정가 I A. 하나의 난폭한 질서는 하나의 무질서다. 그리고 B. 하나의 거대한 무질서는 하나의 질서다. 이 둘은 하나다. II 봄의 모든 초록빛이 푸른빛이라면, 그것은 그러하다. 남아프리카의 모든 꽃들이 코네티컷의 테이블 위에서 밝게 빛난다면, 그들은 그러하다. 영국인들이 실론의 차 없이도 산다면, 그들은 그러하다. 그 모두가 질서정연한 방법으로 진행된다면, 그것은 그러하다. 내재적 모순의, 본질적 통일성의 법칙은, 항구만큼 즐겁다. 한 나뭇가지의 붓놀림만큼 즐겁다. 더 위쪽에 있는, 특정한, 이를테면, 마천드에 있는 한 나뭇가지의, III 결국 삶과 죽음의 뚜렷한 대비는 이 서로 모순되는 것들이 서로를 취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적어도 그것이, 주교들의 책들이 세계를 설명할 때의 이론이었다..

자두나무 정류장 /박성우

. 종점 서울 금천구 시흥동 은행나무길 범일운수 종점에서 나는 내린다 종점 트럭행상에서 귤 한 봉다리 사서 집으로 간다 산골 종점에서 태어난 나는 서른일곱 먹도록 서울은 다 같은 서울이니까 서울엔 종점 같은 건 없는 줄 알았다 종점만 아니라면 어디든 상관없다고 오래전 뛰쳐나와 다시 종점, 집으로 간다 - 박성우 ----------------------------------------------------------------------- 깜짝 놀랐다. 전북 정읍 자두나무가 있는 집에서 사는 줄 알았던 시인이 우리 동네 버스 종점에 내리다니 서울 금천구 시흥동 범일운수 종점, 내 사는 곳에서 귤 한 봉다리 사서 집으로 가는 시인이라니 10 년 전에 나온 시집이니 시인은 다시 자두나무 곁으로 돌아갔을지도 모..

봄나들이

. #봄나들이 사월 끝날과 오월 첫날에 걸쳐 봄나들이를 다녀왔다. 서울서 출발 옥천의 #박기영 시인 책들이겸 옻순잔치에 가는 길의 산천은 앳띤 청년의 푸르름이 가득했다. 난생 처음 온갖 옻순요리를 맛보고 그간 페북에서만 봤던 인연들과 반갑게 인사했다. 가져간 시집 몇 권 건네고 또 몇 권 받아오기도 했다. 생각 같아선 오신 분 모두에게 드리고 싶었으나 면구해서 말았다. 페북에서 객적은 소리 심심찮게 하는 신휘시인은 산속 노을 같았다. 좋아요 100개가 무색하게 진중한 농부시인의 시집 #추파를던지다를 욕조에 뜨건 물 받아 땀 빼며 읽는다. 역시 반가웠던 초설시인, 낯선 나를 정말 반갑게 대해줘서 큰 빚을 진 느낌이다. 태동기와 계단, 먼 옛날의 힘이 크다. 상봉형도 보고 내 시집 내준 곰곰나루 박덕규선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