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나무의 계절 마른 나무의 계절 낮은 담벼락 바깥으로 슬쩍 들어온 바람이 웅크렸다 몇 푼 꾼 햇살 흔적도 없이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슬픈 온기는 아직 온전하다 유난히 화사한 것은 좁은 탓 소한 막 지나 엄동은 이제부터 기우는 오후 해가 이발소 옆을 지나면 남은 온기도 목마르게 식을 것이다 눈치.. 詩舍廊/GEO 2014.01.09
풀 풀 함석 지붕 끝에 풀 한 포기 비 오고 먼지 젖어 흐르다 끝에 맺힌 끼니 목숨 붙들 뿌리나 있을까 파란 하늘 끝에 바싹 마른 새 한 마리 2013. 9. 30 詩舍廊/GEO 2013.10.02
자존심 자존심 삼십년 묵은 은행나무 집 가렸다 허벅지 잘렸다 담벼락 타고 호박 넝쿨 나무를 탔다 그래도 삼십년 발목 틀어 호박잎 만한 잎다발 피워 뭉특한 생명 지키고 있다 2013. 9. 30 詩舍廊/GEO 2013.09.30
풀 한 포기 풀 한 포기 진국 다빠진 화분 하나 줏어다 남은 과꽂씨 몇 알 뿌려뒀더니 근본 모르는 풀 한 포기 탁란으로 불쑥 솟았다 한 줌 중 겨우 틔운 과꽃 두 싹 애지중지 물 주다 툭 바라보면 염치없이 혼자 키 큰 녀석 어깨 떨구고 먼 산만 본다 이름은 모르지만 길섶에서 많이 본 녀석 어쩌다 구.. 詩舍廊/GEO 2013.07.28
물 세 방울 물 세 방울 베란다 옆 화분 하나 하늘 무너지게 비 내려도 피어오르는 흙냄새 맡으며 입맛만 다신다 밤새 숨 골라 아침에 맺었던 한 방울 물이 그립다 허리에 걸린 장마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아랫춤으로 흘러내려가 버렸다 젖었던 기억까지 증발한 아스팔트 옆 가로수 아래 깨진 병 속 .. 詩舍廊/GEO 2013.07.03
플라타너스 플라타너스 오월 밤에 봄비 내린다 붉은 철쭉은 젖어 슬프고 라일락 향기는 씻겨 속상한데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둠의 기둥 플라타너스 첫 입술이 열린다 봄은 이 밤에야 마지막 잠을 깨누나 2013. 5. 9 / 모던카페 詩舍廊/GEO 2013.05.10
사월 사월 1. 언젠가부터 봄은 어쩔줄 모르는 계절이다 산 너머엔 아직도 눈이 내리고 꽃들은 제각기 눈치로 핀다 내일은 무슨 옷을 입어야 하나 연두색 기침을 쏟으며 아내는 꽃무늬 바지를 매만진다 2. 마른 목을 북으로 꺽고 고개만 치켜든 목련은 불편하다 그래서 목놓아 떨어지는게지 남.. 詩舍廊/GEO 2013.04.17
개나리 가족 개나리 가족 한 이틀 비 내리더니 뾰족히 고개 든 강가 개나리들 빗방울 듣듯 돋아납니다 겨우내 싸리빗살로 바람 찬 하늘을 쓸던 메마른 손 부시며 묻어납니다 하루 낮 졸린 햇살이면 지난 가을 모아뒀던 은행잎 미소 꺼내 강변 긴 길 노랗게 웃겠지요 하지만 아셔야 해요 꼬맹이들 달음.. 詩舍廊/GEO 2013.04.12
이제 그만 꽃 지자 이제 그만 꽃 지자 마지못해 피우던 봄은 이제 그만 서러운 웃음을 닫고 내려서자 마디 마다 맺힌 상처들이 아물면 아무렇지 않다 손 흔들고 마침 부는 바람 어깨를 빌리자 꽃 피지 않는다 비웃는 이 몇이나 되겠는가 피어 있으면 잠깐 머물러 웃다 그저 나무로구나 모두 떠나는 것을 혼.. 詩舍廊/GEO 2013.04.01
맹글로브 숲에서 맹글로브 숲 초겨울 오후 예고된 첫 눈 사이로 묵은 나무들이 걷는다 바닥을 더듬느라 닳은 잔뿌리 마다 남루한 의심을 걸치고 저절로 걷는다 숲과 바다는 그저 우뚝 사이를 메우는 머리없는 나무들 떠도는 것들은 맴돌며 가라앉고 다족류의 습관으로 바닥은 분주하다 눈이 와서 기쁘고 .. 詩舍廊/GEO 2013.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