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 스프링 한 달 보름 바람이 불고 여러 날 찬 비 내리더니 잘린 손가락끝에서 기어이 두려움이 튀어 오른다 기억처럼 눈부시게 피어나는 것들 하나 둘 덮었던 그림자를 뒤집고 어둠을 틈타 또깍 깍지를 꺽는 소리 잠시 바라 본 분홍 뒤의 집요 활짝 열리는 것은 젖혀진 어제의 어깨 손을 뒤.. 詩舍廊/GEO 2012.04.16
자벌레 자벌레 세상을 따지겠다온 몸 뻗어 달려온 나절이 있었습니다 뙤약볕 한 식경 끝에 마디 하나 겨우 지났지만 한 조각 그림자 끌며 차마 주저 앉지 않는 것은 내 삶의 길이가 내 닿는 세상 전부임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2008. 8. 7 초고 / 2012. 2.13 개작 詩舍廊/GEO 2012.02.13
車前子 / 질경이 車前子 / 질경이 질펀한 숲을 떠나 거리로 나선 한 포기 질경이 피었습니다 밟아라 밟아라 고함 지르는 모진 애비 질경이 초라합니다 어렸을 적엔 살기 위해 나섰지만 이즈음에는 사는 것으로부터 도망쳐 나섰다나요 꾹꾹 찍는 걸음들 틈에서 납작 잎 엎드리고 성질 머리 하나 겨우 세운 .. 詩舍廊/GEO 2012.02.01
명자꽃 명자꽃 눈 똥그랗게 뜨고 뭘 그렇게 보니 온 천지가 꽃 난리인데 작은 가락지로 피어 무슨 약속을 기다리니 쉽게 지지 않겠다 하얀 손 단단하게 쥔 명자꽃 곱디 고운 다짐 2011. 12. 21 詩舍廊/GEO 2011.12.21
미루나무 미루나무 가로로 낮아지는 산 가로로 어는 강 가로로 누운 집들 가로로 눈이 내려 세상은 가로로 쌓이고 가로의 들판에 가로로 뻗은 길 가로로 걸어가는 사람들 가로로 찍히는 발자국 세상은 가로로 흐른다 가로의 세상에 똑바로 미루나무 한 그루 세로로 외로워 말라 너 또한 오래된 가.. 詩舍廊/GEO 2011.11.08
달팽이 달팽이 달리다 서다 달팽이 뺑뺑이 집 지고 꽉막힌 저녁의 남태령을 넘는다 앞으로도 구르고 꽁지 빨갛게 옆으로도 구른다 하루 종일 달려도 그저 몇 걸음 또아리로 말리는 등 뒤의 생계 멈춰도 멈출 수 없는 관성 빙글빙글 섞이는 남은 하루 신호는 어김 없고 또 달팽이 달리다 서다 굳.. 詩舍廊/GEO 2011.10.19
피라미 피라미 파르르 느닷없이 던져졌다 과도한 응답에 대한 복수 또는 어긋난 과녁으로 그늘도 아닌 착지의 코 앞 탁한 물빛의 안부들 미늘 없는 빛살들이 비늘 사이사이 꽂힌다 파닥파닥 꺼지지 않는 물결의 기억 아가미 한 입 마다 바닥은 점점 깊어 간다 마지막 갈증을 세고나면 한결 가벼.. 詩舍廊/GEO 2011.09.29
앵두나무 앞뜰 앵두나무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어린 목련이 또각또각 꽃 지우는데 목 떨궈 외면할뿐 여린 손목 담쟁이 어깨를 간질여도 마른 팔로 대꾸가 없다 지난 이 맘 때 무성히 쏟던 붉은 별자리는 어디에도 없고 비껴 든 비비추 깍지 낀 틈으로 기어 오르던 거친 흙의 슬픔은 깊다 가지마다 고개 돌리고 오랜 바람 마저 긋는 침묵으로 너는 어디로 가는지 쏟아진 별빛들 터져 아우성으로 솟는 발치 연푸른 촉소리 들리지도 않는지 *2007년 6월 26일 초고 / 2011년 9월 20일 수정 詩舍廊/GEO 2011.09.20
마늘 마늘 마음을 찧는다 꾹 눌러 엎어진 종 뺑 돌려 깍여진 불알 울림도 없이 부순다 말라가는 한 시절 한 모금 고통까지 뽑아 송곳니로 맺은 독기 여섯 개의 하늘로 매웁게 매웁게 피우고 싶었는데 빠각빠각 종소리 플라스틱 가랭이 사이에서 눈두덩이 터져 나가며 마늘을 찧는다 2011. 9. 16 詩舍廊/GEO 2011.09.16
모과나무 모과나무 2011. 8. 22 못생긴 열매를 단 탓인가 높이 오른 모과나무 깊은 주름이 세로로 깊다 주름 안과 주름 밖 세월에 얽은 온 몸엔 요며칠이 떨어지고 오늘이 또 일어나고 굴곡 유난한 허리춤엔 텅빈 매미 한 껍질 마른 어제처럼 매달려 빈 울음 운다 고개 든 하늘에 걸린 못생긴 무과 두.. 詩舍廊/GEO 2011.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