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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어

취몽인 2017. 3. 8. 13:43




북어

 

 

그 놈은

부엌에 연한 방

부엌과 연결되는 문

바로 옆에 걸려있었다

 

방은 늘 어두웠고

제일 어두운 구석에는

얻어온 텔레비전의 껌껌한 깜빡임 속에

이만수가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세운 무릎을 두 팔로 감싸고

어둠 속의 방망이질을 보는 녀석 앞에는

반쯤 피우다 부벼 끈 한산도 몇 개

 

그 곁에 앉는 건 불편했다

방은 제법 넓어

한 이미터쯤 떨어져 앉아

같은 어둠을 바라보곤 했었다

 

키 작은 김수영

세월이 지나 김수영 사진을 본 후

녀석이 김수영을 닮았다 생각했다

퀭한 눈 마른 광대 푸석 솓은 머리카락 탓일까

 

마른 표정으로

바라볼 때면 공연히 무서웠다

어둠 속의 악귀를 만난 것처럼

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오래 폐를 앓은 녀석은

난생 처음 제발로 찾아간 병원에서

다시 못 뜰 눈을 감았고

새벽에 다시 어둠 속으로 돌아와 그렁그렁 죽었다

 

세로로 걸린 벽에서 내려져

텔레비전 앞에 반듯이 누워

고개 한 번 뒤로 젖히곤

퀭한 눈이 어디론가 꺼져버렸다

 

누군가가 한 번 불러보라고 했다

하지만 부를 수 없었다

대답하지 않을 줄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목을 비린 가래 한 움큼이 가로막고 있었으므로

 

몇 년 뒤

그 어둠을 아주 떠났다

그리고 오래 됐지만

빈 어둠 속 비린 벽에는 여전히 녀석이 걸려있다

 

 

2017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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