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왼쪽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왼 발을 보셨나요 뜻 없이 힘껏 지탱해 온 오른 발 곁에 선 초라한 친구 세 살 지나 그저 끌려 온 그림자로 무던히도 구박이 많았지 계단을 올라도 그저 따라 오르기만 하던 가늘고 속 좁은 친구 너만 아니었으면 하늘을 날았으리 정강이에 새겨진 비틀림 몇 .. 詩舍廊/2021전 발표 詩 2013.01.04
갱년기 갱년기 나를 어찌할 수 없으므로 나는 이유 없이 이해되어야 한다 나는 나로부터 비롯되지 않는다 나의 분노는 근거가 없다 나는 누구보다 나를 경멸하므로 나는 다시 경멸 받을 수 없다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 나와 헤어지고 싶은 나 나는 수 없이 나를 떠나지만 나는 어김없이 내게 .. 詩舍廊/2021전 발표 詩 2013.01.04
오래된 벽돌 오래된 벽돌 1. 갓 태어난 바람이 불어 남한강 낮은 사구(沙丘) 이름을 부른다 이제는 다시 떠나야 할 때 어깨에 얹힌 페름의 화석을 젖힌다 쉽게 떨어지지 않는 고생(古生)의 저력 굳어가며 수 없이 들었던 뜨거운 멸종 퇴적은 타버리지도 잊혀지지도 않는다 갇혀있던 누런 햇볕이 기어 .. 詩舍廊/2021전 발표 詩 2013.01.04
抽象 抽象 눈 그쳐 시린 하늘 까마득히 매 한 마리 깜박 허튼 눈 따라 오르는 미루나무 끝 소실 하나로 파르르 발톱 번득 그 소실 하나 하늘 찍어 긋는다 파아랗게 베어진 겨울 산 그 소실 하나로 피 한 방울 꽃 피우는 시퍼런 마음 * 세계모던포엠 작가회 16시집 '무시로 그리워지는' 詩舍廊/2021전 발표 詩 2013.01.04
가을로 출근하는 일 가을로 출근하는 일 내 앞 열시 방향 노인들의 주름 겨운 수다 그것도 남자 둘의 긴 계단을 올라 집 비울 준비를 하는 나무와 노랗게 짐 싸는 나뭇잎을 보느니 맞춤하게 도착한 버스 오래된 정현종의 시집을 덮고 잠 덜 깬 하늘 무표정을 본다 아침이 쌓여 노인들은 차곡차곡 늙고 나무들 .. 詩舍廊/2021전 발표 詩 2013.01.04
그 해 가을 그 해 가을 모든 것을 가리고 흐르는 안개의 아침이어서 좋았다 깨어나지 않는 많은 것들을 묻고 낮게 기는 얼굴들 속에서 희미하게 웃는 너의 모습 가늘게 젖는 눈가가 좋았다 안개 낀 날은 맑다 했지 바람에 실린 서늘한 햇살의 무게로 노랗게 저무는 어린 나무들 그 화사한 몰락이 좋.. 詩舍廊/2021전 발표 詩 2013.01.04
어둠은 어디에서 오는가 어둠은 어디에서 오는가 구층 높이에서 밤의 깊은 걸음을 살핀다 천천히 맑아지는 침묵의 뒤에서 고양이 한 마리 기척에 놀라 골목으로 어두워지고 긴장한 보안등 위에 웅크린 지붕의 숨소리 모두들 납작하게 하늘을 이고 누웠다. 잠든 것들을 덮고 눈뜸을 경계하는 듯 검게 반짝인다. .. 詩舍廊/2021전 발표 詩 2013.01.04
祭儀 祭儀 동쪽 하늘이 붉게 일어날 때 창을 열면 훅 몰려드는 새벽 혼 맞이 불을 밝힌다 목덜미엔 밤새 쌓인 이야기가 두텁고 눈가엔 기억도 못하는 슬픔이 맺혔다 먼 곳을 바라보며 재촉하는 불씨 서둘러 연기는 말려 올라가고 툭 떨어지는 일배의 흔적 아득하다 고개는 꼿꼿이 의식은 다 타.. 詩舍廊/2021전 발표 詩 2013.01.04
[스크랩] 시가 있는 아침 편지 -- 詩人通信/김재덕(2월 1일 수요일) 詩人通信 김재덕 굴전 부침내 번들하는 피맛골 즈음에 능곡 토굴처럼 깊은 소굴이 있었다 저녁해가 완강한 교보문고 지하로 내려가고 종로 가득 건강한 퇴근들이 쏟아져 나오면 철문을 젖히고 들어서는 낯익은 얼굴들 시작은 늘 마른 멸치에 맥주 몇 병 그리고 따로 문 바깥 일차 끝난 .. 詩舍廊/2021전 발표 詩 2012.09.25
베토벤 바이러스 베토벤 바이러스 띠리리리 리리리리리 사흘에 한 번 꼴로 베토벤은 삼거리에 나타난다 싸구려 신디사이저로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하면 뒷골목 깊숙한 곳에서부터 접신된 사람들이 끌려 나온다 제각기 묵은 악기들을 가슴에 안고 어깨에 지고 땅에 끌면서 연주가 끝나기 전에 닿으려 .. 詩舍廊/2021전 발표 詩 2012.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