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이라고? 똥이라고? 지들은 행여나 혹이라도 생길까 노심초사 수 년에 한 번씩 구석구석 불 비춰 살피고 이 것 저 것 좋은 것들만 챙겨 먹잖아 그리고 그 속 하나라도 탈나면 사지 육신이 소용없다 야단이지 아차 하면 남의 성한 것이라도 같다 붙여 되살리려 용쓰고 무엇보다 우리보다 넓은 뱃 속.. 詩舍廊/2021전 발표 詩 2013.10.04
버스 안에서 버스 안에서 검은 여자가 버스를 탄다 짧은 머리를 뒤로 묶고 앉자마자 전화를 건다 중환자실 하루 입원비가 얼마예요? 남편, 아이들 직장 보내고 학교 보내고 설겆이 대충 훔치고 검은 마음 걸쳐 입고 나선 길일 게다 오전은 노선을 따라 달리고 멈추고 미끄러지다 덜컹거리는 데 불쑥 .. 詩舍廊/2021전 발표 詩 2013.09.30
백설기 백설기 오백 원짜리 맑은 샘물 한 병 사다 놓고 검은 콩 박힌 백설기 뜯어 혼자 먹는다 다음 달이면 수당 오백만 원 탈 동료가 낸 턱 두 달 공치고 이 달도 빈 면목에게 한 덩이 문이 열리고 점심 드셨어요 눈부신 안부 딱 걸린 끼니 맑은 샘물로 떠밀어 보내고 아, 네, 좀 일찍이요 그새 구.. 詩舍廊/2021전 발표 詩 2013.09.25
다운사이징 다운사이징 지금을 꼭지점이라 해야할까 정점이라 해야할까 특별히 뭘 이룬 것도 없는 시간의 누적 끝에서 아, 이제부터 내리막이구나 각성이 툭 꺾인다 내 돈이건 뉘 돈이건 반지하 단칸방에서 서른 한 평 아파트까지 오고 뚜벅이에서 2,000cc 자동차까지 쌓은 부피와 높이의 소용이 다 .. 詩舍廊/2021전 발표 詩 2013.09.25
물에 빠진 돼지 물에 빠진 돼지 나는 물에 빠진 돼지를 먹지 않는다 김치 찌개도 참치 김치찌개만 먹고 돼지국밥은 냄새도 못 맡는다 심지어 짜장면 속 시커멓게 위장한 놈이나 국물에서 막 건져진 수육도 별로다 돼지를 특별히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가둬 먹여 두둑해진 삼겹 그놈을 끓는 물 속에 우려 .. 詩舍廊/2021전 발표 詩 2013.09.23
파도고개 파도고개 죽은 아버지를 만나고 온 오후 문득 찾은 옛집은 모로 기울어 있었다 두류산의 발등쯤 되는 언덕배기 세월이 덕지 앉은 골목도 한쪽으로 좁아지고 있었다 정수리에 타워를 꽂은 산이 경사를 붙들지 않으면 모조리 반고개 쪽으로 쓸려내려 갈 것 같은 길 예전의 나는 이 골목을 .. 詩舍廊/2021전 발표 詩 2013.09.23
페이스 아웃 페이스 아웃 거리에 얼굴 하나를 걸어 놓고 돌아 왔다 수많은 얼굴들이 그 앞을 지나 가고 누구는 제 얼굴을 디밀어 겹쳐 놓고 누구는 또 다른 얼굴을 옆에다 걸어 둔다 해질녘 너덜해진 얼굴을 걷어 살펴 보면 진 종일 누가 보나 엿봤던 내 눈치들만 덕지 덕지 2011. 6. 14 초고 / 2013. 4. 18 수.. 詩舍廊/2021전 발표 詩 2013.09.23
천정의 표정 천정의 표정 올려다 보고 있다고 해서 내려다 보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넓은 무표정 속에 수 많은 증발들을 머금고 네 귀퉁이로 몰려가다 갇힌 확장 한 켜 밝은 밤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질긴 실크 꽃무늬를 점점이 박고 묵묵히 돌아 누웠지만 시간은 안다 얼굴 아래 둥근 불이 꺼.. 詩舍廊/2021전 발표 詩 2013.09.23
가면 가면 숨은 것들은 더 깊이 숨기고 싶은 것들은 더 높이 윤곽이란 윤곽은 모두 일으켜 누구를 부르는 것일까 골 깊은 경계는 아직 영혼을 부르지 못한다 가장 오래된 기억을 태우고 사라지지 않는 두려움을 저어 태고의 표정을 칠한다 대지를 관통한 눈으로 코로 입으로 솟는 희뿌연 호흡.. 詩舍廊/2021전 발표 詩 2013.09.23
Ctrl + v Ctrl + v 현대백화점을 지나 동호대교 남단에 선 너 시간은 보충되고 거리는 확대되었다 절개된 어제들 또한 보기좋게 지워졌지만 달리는 버스에서 활짝 웃는 표정은 여전히 미심쩍다 너는 핑크빛 건물 속에서 걸어 나오고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 똑같은 디자인의 원피스를 입은 여.. 詩舍廊/2021전 발표 詩 2013.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