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에세이 95

역사.

. #역사 고백하건데 나는 역사에 대한 지식이 습자지처럼 얇다. 중고등학교 국사, 세계사 시험 공부에서 몇 걸음도 더 나가지 못했다. 그간 읽은 역사 관련 책들도 주로 개요나 특정 주제에 한정된 것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책들을 읽으며 세계사의 시간들이 머리 속에서 엉키는 경험을 여러번 했다. 프랑스대혁명의 시기에 중국은 뭘 하고 있었으며 우리나라는? 뭐 이런 식의 뒤죽박죽으로 세계는 따로 놀았다.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와 김홍중의 '마음의 사회학'을 년말 년초에 걸쳐 같이 읽으며 인류 문명사에 프랑스대혁명이 끼친 영향을 새삼 느낀다. 며칠째 몸이 좋지않아 쉬는 날인 목요일 오전에 모처럼 늦잠을 자고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한다. 마지막 4권은 자연주의, 인상주의, 영화의 시대 이야..

새롭게 만나는 공자

. #새롭게_만나는_공자 새롭게 만나는 공자 주말 동안 그간 읽고있던 책을 덮고 친구의 책을 읽었다. 법학자가 쓴 고전(논어) 다시 읽기가 꽤 궁금했던 탓이다. 친구와 나는 고3때 한 반이었다. 공부를 잘했던 친구는 서울법대를 갔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 40여년 간 딱 두 번 정도를 만난 것 같다. 책을 받아보니 내가 얼추 짐작으로만 알고 있었던 친구의 이력이 표지 안쪽 첫 페이지에 적혀 있었다. 사법고시를 당연히 합격했지만 법조계로 가지않고 케임브리지 교수로, 고대로스쿨 교수로 학문을 이어가는 인생을 살고 있는 친구. 계동 근처 뒷편 어느 골목에 직접 집을 지어 살고 있는 친구. 아이들은 프랑스에 살고 있는.. 헌법학자로 알고 있는 그가 느닷없이 공자를, 논어를 말하는 책을 냈다는 소식을 페북에서 처음 ..

. #길 대략 스무날 동안 스물두 편의 영화를 봤다. 거의 십 년 간 본 편수와 비슷하다. 처음엔 말랑말랑한 일본영화로.. 두 시간 버티기에 익숙해지곤 회색의 타르코프스키 몽환의 장예모까지. 오늘은 데이비드 린치의 #스트레이트스토리. 대부분 영화를 보면서 한두번씩 울었다. 눈물이 많은 건 내탓이 아니다. 누군가 인생을 굽이치는 길이라 했다. 내 생각은 다르다. 모든 이의 인생은 스트레이트다. 휘청일 망정 똑바로 걷는 것이 인생이다. 실패는 곁길이 아니다. 다만 경사진 곧은 길일뿐. 스물 몇 편 영화는 가슴 속에 미안함을 많이 새겼다. 미안한 이는 왜 이다지도 많은가?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제일 미안한 이들이 사는 곳. 거기서 다음 길을 가라는 명령이 오버랩으로 남았다 211119

. 차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 차와 음악 그리고 책이 벗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책 읽는 일도 음악을 듣는 일도 별 재미가 없다. 가끔 영화를 보기도 하지만 두 시간을 작은 화면에 갇히는 일은 여전히 마뜩찮다. 남은 것은 멍하니 앉아서 차를 마시는 일이다. 종일 여러 종류의 차를 마신다. 아침에는 커피, 낮에는 이런저런 동양차, 사이사이엔 냉수차(?), 홍차 등등 자주 말하지만 차 맛은 잘모른다. 느껴보려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멀다. 커피는? 그냥 맛도 모르면서 중독된 듯하다. 그간 에스프레소 캡슐커피를 마시다 오늘은 드립백 커피를 마셔본다. 기름기 없는 담백함이 좋다. 은은한 예가체프의 향도 편안하다. 이런게 차의 맛인가?

휴일

. #휴일 좀 쌀쌀한 정도의 날씨인데 뉴스는 한파라고 호들갑입니다. 감정의 과잉시대를 살다보니 표현도 넘칩니다. 저널리즘을 잃어버린 언론이 목 매고 있는 센세이셔널리즘은 이제 일기예보도 기웃거립니다. 불쌍한 언론입니다. 일주일에 하루, 일요일만 쉬니 휴일이 소중해졌습니다. 옛날 토요일 반공일의 시절처럼 꼭 제대로 쉬어야지 하는 몸과 마음의 명령이 들립니다. 느즈막한 아침을 먹고 욕조에 들어앉아 한 주를 돌아봅니다. 특별하지 않은, 인생의 한 토막이었습니다. 별일 없어 행복한 순간이 또 지나갔습니다. 둘째 혼인날이 슬금슬금 다가옵니다. 다음 주면 아내는 예식 한복을 맞추러 간다 하고 저도 몇 주 뒤엔 양복을 새로 사야합니다. 단 하루를 위한 의례가 참 요란하다 싶지만 누군가에겐 무엇보다 소중한 날일테니 따..

덕분

. #덕분 한때 나는 불행한 사람이라 생각한 시절이 있었다. 남에겐 없는 장애도 있고, 잘 사는 부모를 만나지도 못해 늘 궁핍하게 사는 게 싫었다. 사회에 나와 남부럽지 않은 대기업을 다닐 때에도 그 불행의 의식은 사라지지 않았고 때문에 적지 않은 방황을 하느라 젊은 날의 많은 기회들을 탕진했었다. 내 마음 속의 불행은 나만 다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가족에게도 불행의 그늘을 드리웠었다. 적잖은 세월이 흘러 이 자리에 섰다. 이제 나는 더이상 불행하지 않다. 다리는 옛날보다 더 불편하고, 여전히 그리 잘 살지는 못하지만 행복하다. 이 반전은 십년 전쯤의 바닥에서 시작됐다. 잘 나가던 광고대행사 이사에서 보험영업사원으로 추락했을 때, 그 모멸의 시간에서 나를 건져준 건 친구들이었다. 그리 친하지도 않았던..

마산

. 마산 페친들 중에 굳이 아는 척 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다. 그 중 몇 분은 경남 서부에 계신 분들이다. 송구한 마음이 많다. 그리고 괜히 뻔뻔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1984년 12월, 봉두난발의대학 졸업을 앞두고 시절이 좋아 취직이 됐었다. 마산에 본사를 둔 한일합섬이었다. 새마을연수원 근처의 연수원에 들어가 한 달 연수를 받고 새해 1월 4일인가부터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한일합섬의 본사는 양덕동 공장이었으니 서울사무소 근무를 한 셈이다. 당시 대졸 신입사원의 직급은 계장이었다. 신입사원이 계장이라니? 나중에 마산 본사에 출장을 와서 알았다. 당시 한일합섬 총 직원 수는 거의 수 만 명. 대부분은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이 직원. 그 위에 관리자가 주임, 그리고 대졸 사무..

밑천

. 밑천 대학 졸업하고 첫 직장에서 광고과로 발령을 받은 이래 근 30여 년을 광고밥을 먹고 살았습니다. 누구처럼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있는 대단히 성공한 캠페인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대략 1,000여 개 이상의 브랜드 광고를 기획하고, 만들고 매체에 실었습니다. 정신없이 일하던 어느 순간 마흔이 넘었고 그 바닥에서는 퇴물이 됐습니다. 그래도 배운 도둑질이 광고인지라 그 언저리에서 고군분투하며 한 십년 더 버텼는데 그 또한 한계가 있더군요. 광고바닥에서 A.E (광고기획자)들이 농담처럼 자조적으로 하던 말이 있었습니다. 평생 남의 물건을 팔아주지만 막상 제 장사를 할 때가 되면 아무것도 제대로 못해 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몇 가지 이유를 대긴 했지만 광고가 실전 마케팅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커뮤니케이션 ..

낮술의 시절

. 4단계란다. 저녁 여섯시 이후엔 두명만 모일 수 있다 한다. 나 빼고 한명이니 그야말로 독대작만 가능하다. 나는 일대일로 술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술도 말도 쉴 틈이 없는 탓이다. 광 팔며 가끔씩 쉬기도 할 수 없는 세 명이 치는 고스톱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서 꼭 필요한 용무가 있거나 별 대화가 필요없는 가까운 친구 빼고는 가능하면 둘이서만 만나는 술자리는 피하고 어떻게든 한 명을 더 불러 세 명 자리를 만들곤 한다. 근데 그걸 못하게 됐다. 그렇다고 한 잔 생각이 날 때 혼자 집 식탁에 앉아 혼술만 할 수도 없으니 결국 대안은 낮술이다. 오후 네시쯤 만나 한 두시간 마시고 여섯시에 파장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사무실 문연 지 꼴랑 열흘된 형편에 쫄딱 망하기 좋은 발상이지만 뭐 가..

딸과 함께한 마지막날들을 위하여

. 오랜만의 온전한 휴일. 책상 위에 놓인 큰딸이 읽은 책을 읽는다. 어쩌면 제가 다 읽고 나를 읽으라고 내 책상에 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제목이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날들.' 썩 유쾌해보지지 않은 제목이다.^^ 저자인 필립 톨레다노는 사진작가다. 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낸 백세 가까운 아버지와의 이별 과정을 사진으로 남기고 짧은 글을 보탠, 거의 사진집에 가까운 책이다. 아버지는 단기기억상실증에 시달리며 최후의 시간을 보낸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안타까우면서도 아쉽다. 오래된 관계의 이별이란 대부분 다 그런 것이다. 나 역시 어머니가 떠난지 이제 열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쉬움은 바지가랭이끝에 매달려 툭하면 나를 잡아 당긴다. 내 큰 딸은 이제 서른셋. 우리 부부는 환갑 코앞. 나도 슬슬 떠날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