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 기형도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쉽사리 키가 변하는 그림자들은 한 장 열풍에 말려 둥글게 휘어지는구나 아무 때나 손을 흔드는 미루나무 얕은 그늘 속을 첨벙이며 2시 반 시외버스도 떠난 지 오래인데 아까부터 서울집 툇마루에 앉은 여자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신작로 위에는..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0.06.04
이별가 / 박목월 이별가 / 박목월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 밧줄은 삭아 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을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니 흰 옷자라기..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0.05.31
빈 집 / 기형도 빈 집 /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 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잇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0.05.28
낙화 / 이형기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激情)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 결별(訣別)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0.05.14
꽃 씨 / 문병란 <빌려 온 사진> 꽃 씨 / 문병란 가을 날 빈손에 받아든 작은 꽃씨 한 알! 그 숱한 잎이며 꽃이며 찬란한 빛깔이 사라진 다음 오직 한 알의 작은 꽃씨 속에 모여든 가을 빛나는 여름의 오후 핏빛 꽃들의 몸부림이여 뜨거운 노을의 입김이 여물어 하나의 무게로 만져지는 것일까. 비애의 껍질을 모아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0.05.13
못 위의 잠 / 나희덕 못 위의 잠 / 나희덕 저 지붕아래 제비집 너무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도 가득차고 어미는 둥지 위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0.04.19
문인수 <굿모닝> 굿모닝/문인수 어느날 저녁 퇴근해오는 아내더러 느닷없이 굿모닝! 그랬다. 아내가 웬 무식? 그랬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후 매일 저녁 굿모닝. 그랬다. 그러고 싶었다. 이제 아침이고 대낮이고 저녁이고 밤중이고 뭐고 수년째 굿모닝, 그런다. 한술 더 떠 아내의 생일에도 결혼기념일에도 여행을 떠나..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0.04.13
문태준 <바닥> 바닥/문태준 가을에는 바닥이 잘 보인다. 그대를 사랑했으나 다 옛일이 되었다 나는 홀로 의자에 앉아 산 밑 뒤뜰에 가랑잎 지는 걸 보고 있다 우수수 떨어지는 가랑잎 바람이 있고 나는 눈을 감는다 떨어지는 가랑잎이 아직 매달린 가랑잎에게 그대가 나에게 몸이 몸을 만질 때 숨결이 숨결을 스칠 때..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0.04.13
[스크랩] 소주 한잔 했다고 하는 얘기가 아닐세 소주 한잔 했다고 하는 얘기가 아닐세 울지 말게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날마다 어둠 아래 누워 뒤척이다 아침이 오면 개똥같은 희망 하나 가슴에 품고 다시 문을 나서지 바람이 차다고 고단한 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고 집으로 되돌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거라네 아차..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0.04.05
[스크랩] 독무(獨舞)/엄원태 독무(獨舞)/엄원태 검붉은 벽돌담을 배경으로 흰 비닐봉지 하나, 자늑자늑, 바람을 껴안고 나부낀다 바람은 두어 평, 담 밑에 서성이며, 비닐봉지를 떠받친다 저 말없는 바람은, 나도 아는 바람이다 산벚 꽃잎들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던 때, 눈물 젖은 내 뺨을 서늘히 어루만지던, 그 바람이다 병..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0.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