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 모습 / 문정희 뒷 모습 / 문정희 유빙 사이를 떠돌던 배가 낡은 해안선에 당도하듯이 그가 내 앞에 뒷통수를 들이민다 누렇게 시든 갈대 숲에 검은 칠을 해달라고 송충이같이 꿈틀거리는 염색 솔을 쥐어준다 슬픔은 최고의 진리라 이윽고 여기에 도달했다 짐승들 뛰어노는 풍랑에서 살아남은 늙은 남자의 뒷머리에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1.05.03
너와집 한 채 / 김명인 <빌린 사진> 너와집 한 채 / 김명인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겠네 저 비탈바다 온통 단풍 불 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가..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1.04.11
있는 힘을 다해 / 이상국 있는 힘을 다해 / 이상국 해가 지는데 왜가리 한 마리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저녁 자시러 나온 것 같은데 그 우아한 목을 길게 빼고 아주 오래 숨을 죽였다가 가끔 있는 힘을 다해 물속에 머릴 처박는 걸 보면 사는 게 다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0.12.26
악어를 조심하라고? / 황동규 악어를 조심하라고? / 황동규 1. 나는 뭐지? 친구 동생의 사무실 '도와드리고 싶지만...' 창밖의 눈발은 어두워지고 탁자 위엔 식는 커피 그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낯익은 사무용 컴퓨터를 확인하다가 슬쩍 'soul[魂]'을 찍었다. 작동 키를 누르자 모니터에 'crazy[미쳤어]?' 누가 장난쳤군 창밖에는 다시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0.12.10
[스크랩] 한 벌의 양복/손순미 한 벌의 양복/손순미 한 벌의 그가 지나간다 그는 늘 지나가는 사람 늘 죄송한 그가 늘 최소한의 그가 목이 없는 한 벌의 양복이 허공에 꼬치 꿰이 듯 케이블카처럼 정확한 구간을 지키듯 신호등을 지나 빵집을 지나 장미연립을 지나 가끔 양복 속의 목을 꺼내 카악- 가래를 뱉기도 하며 한 벌의 양복으..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0.12.09
속초에서 / 장석남 속초에서 / 장석남 속초 중앙시장 한가운데 빨간 고무 다라이 맑은 핏물 살얼음 속 허연 돼지머리가 가만히 눈감고 하늘을 향했다 아마도 처음이리 설마 목을 도려낸 자의 배려는 아니겠지 죽어 하늘을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고 애써 생각한다 아직 미간에 방울소리가 묻은 햇무당이 장을 보러 와서 눈..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0.11.18
<물새의 초경> 김경주 물새의 초경 / 김경주 버려진 등대에 살고 있는 개가 상공을 바라본다 해발 몇천 미터 상공에서 초경을 시작하는 물새 가장 높은 안개에 자신의 위도를 세우고 몸의 물관들을 바깥에 모두 열어놓았다 그것은 눈부신 문자의 활공 같은 것 나는 해변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수첩 속 짐승들을 몰고 와 나무..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0.11.05
[스크랩] 두고 온 시 / 고은 두고 온 시 / 고은 그럴 수 있다면 정녕 그럴 수만 있다면 갓난아기로 돌아가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가 왜 없으리 삶은 저 혼자서 늘 다음의 파도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가던 길 돌아서지 말아야겠지 그동안 떠돈 세월의 조각들 여기저기 빨래처럼 펄럭이누나 가난할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0.10.15
[스크랩] 효자가 될라 카머/이종문 효자가 될라 카머/이종문 - 김선굉 시인의 말 아우야, 니가 만약 효자가 될라카머 너거무이 볼 때마다 다찌고짜 안아뿌라 그라고 젖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 된다. 너거무이 기겁하며 화를 벌컥 내실끼다 다 큰 기 와이카노, 미쳤나, 카실끼다 그래도 확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 된다 <현대시조>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0.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