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택 <오래된 고독> 오래된 고독 김기택 쓰다듬기 좋은 흰 털 속에 손바닥에 알맞게 들어오는 야구공만 한 머리통이 있다. 쓰다듬어 주기를 기다렸다는 듯 강아지는 꼬리를 흔든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그 귀여움에 깜빡 죽어 만지고 안고 비비고 뽀뽀한다. 푸들이라고 한다. 한 달여 전에 분양받았다고 한다. 한창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0.03.22
문인수 <밝은 구석> 밝은 구석 문인수 민들레는 여하튼 노랗게 웃는다 내가 사는 이 도시, 동네 골목길을 일삼아 ㅁ 자로 한 바퀴 돌아봤는데, 잔뜩 그늘진 데서도 반짝! 긴 고민 끝에 반짝, 반짝 맺힌 듯이 여럿 민들레는 여하튼 또렷하게 웃는다. 주민들의 발걸음이 빈번하고 아이들이 설쳐대고 과일 파는 소형 트럭들 시..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0.03.18
[스크랩] 빈집의 약속/문태준 빈집의 약속/문태준 마음은 빈집 같아서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어떤 때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았다 볕이 보고 싶은 날에는 개심사 심검당 볕 내리는 고운 마루가 들어와 살기도 하였다 어느 날에는 늦눈보라가 몰아쳐 마음이 서럽기도 하였다 겨울 방이 방 한 켠에 묵은 메주를 매달아 두듯 마음에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0.03.16
[스크랩] 소금 창고 / 이문재 소금 창고 - 이문재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늦가을 평상에 앉아 바다로 가는 길의 끝에다 지그시 힘을 준다 시린 바람이 옛날 노래가 적힌 악보를 넘기고 있다 바다로 가는 길 따라가던 갈대 마른 꽃들 역광을 받아 한 번 더 피어 있다 눈부시다 소금창고가 있던 곳 오후 세시의 햇빛이 갯벌 위에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0.03.16
산 강 < 독수리는 큰 나래를 쉬이 펴지 않는다> 독수리는 큰 나래를 쉬이 펴지 않는다 - 영축산문 생면기 (靈築山門 生面記) 애초에 말할 수 없다, 엄습해 오는 압기(壓氣)를 아름드리 솔밭길 솔솔 솔뫼의 청정한 품 병풍을, 높넓은 하늘을 나래를 펴 애둘렀으니 쏟아지는 꽃비련만 꽃방울은 녹지 않고 퇴락한 단청일망정 예불소리 절로 탄다 얼마나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0.03.11
[스크랩] 나쁜 꽃 다시 읽는 시 / 나쁜 꽃 나쁜 꽃 오인태 참외서리 들켜 혼비백산 내닫다 개골창에 처박혔을 때, 코밑에서 히죽히죽 웃고있던 고것이 아마 연붉은 고마리꽃이었겠다 처음으로 중학동기생의 입술을 훔치고 현옹수 마구 떨리는 소리를 엿듣던 그 봄날 달빛 가득하던 과수원 이제 막 망울을 터뜨리던 사과..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0.02.14
[스크랩] 아버지들/정호승 아버지들/정호승 아버지는 석 달치 사글세가 밀린 지하셋방이다 너희들은 햇볕이 잘 드는 전세집을 얻어 떠나라 아버지는 아침 출근길 보도 위에 누가 버린 낡은 신발 한 짝이다 너희들은 새구두를 사 싣고 언제든지 길을 떠나라 아버지는 페인트칠할 때 쓰던 낡고 때묻은 목장갑이다 몇 번 빨다가 잃..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09.12.15
서산대사 <답설 踏雪> <빌려온 사진> 답설 답설야중거 踏雪野中去 눈 쌓인 벌판을 걸어갈 때 불수호란행 不須胡亂行 어지럽게 걷지 말라 금일아행적 今日我行跡 오늘 나의 가는 길이 수작후인정 邃作後人程 뒤에 오는 사람의 길이 된다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09.11.04
[스크랩] 직소폭포 / 안도현 직소폭포 / 안도현 저 속수무책, 속수무책 쏟아지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필시 뒤에서 물줄기를 훈련시키는 누군가의 손이 있지 않고서야 벼랑을 저렇게 뛰어내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드오 물방울들의 연병장이 있지 않고서야 저럴수가 없소 저 강성해진 물줄기로 채찍을 만들어 휘두르고 싶은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09.11.03
신경림 <묵뫼> 묵뫼 신경림 여든까지 살다 죽은 팔자 좋은 요령잡이가 묻혀 있다. 북도가 고향인 어린 인민군 간호군관이 누워 있고 다리 하나를 잃은 소년병이 누워 있다 등 너머 장터에 물거리를 대던 나무꾼이 묻혀 있고 그의 말 더듬던 처를 꼬여 새벽차를 탄 등짐장수가 묻혀 있다 청년 단장이 누워 있고 그 손..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09.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