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우리 밟고 가는 모든 길들은/정우영 우리 밟고 가는 모든 길들은/정우영 1 길 위로도 길이 지나고 길 아래로도 길이 지난다. 이 평범한 사실을 깨달은 게 그리 오래지 않다. 사람도 웬만큼 나이를 먹으면 예지가 번득이는 모양이다. 어느날 갑자기 길이 느껴졌다. 2 내 말이 믿기지 않거든, 내가 시키는 대로 한번 해보라. 저녁 어스름 얕게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09.10.20
[스크랩] 낙타/신경림 낙타/신경림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 밖에 본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을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세상에 다시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09.10.20
천상병 <歸天> 歸 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09.10.09
황금찬 <문> 門 기울어지는 시각 싸늘한 거리에 비가 내린다 운명처럼 마련된 내 생존의 길 앞에 모든 문들은 잠기어 있다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이 절박한 지대에서 나는 몸부림을 치며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고 가슴에 박히는 수없는 상처 이것은 너무 심한 장난 같다 사람은 평생을 두고 열리지 않..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09.09.28
[스크랩] 침묵 /김명인 <빌려온 사진> 침묵 /김명인 긴 골목길이 어스름 속으로 강물처럼 흘러가는 저녁을 지켜본다 그 착란 속으로 오랫동안 배를 저어 물살의 중심으로 나아갔지만, 강물은 금세 흐름을 바꾸어 스스로의 길을 지우고 어느덧 나는 내 소용돌이 안쪽으로 떠밀려 와 있다 그러고 보니, 낮에는 언덕 위 아카..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09.08.24
[스크랩] 뱅어포 / 이정 뱅어포 / 이정 뱅어포 한 장에 납작한 바다가 드러누워 있다 수 백 수천의 얇고 투명한 바다에 점 하나 찍어 몸이 되었다 무수한 출렁거림 속에 씨앗처럼 꼭꼭 박힌 캄캄한 눈. 눈. 눈 머리와 머리가 포개지고 창자와 창자가 겹쳐진 이 걸 무어라 불러야 하나 혼자서는 몸이랄 수도 없어 서로 기대고 잠..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09.06.30
[스크랩] 적막한 바닷가 / 송수권 적막한 바닷가 / 송수권 더러는 비워놓고 살 일이다 하루에 한 번씩 저 뻘밭이 갯물을 비우듯이 더러는 그리워하며 살 일이다 하루에 한 번씩 저 뻘밭이 밀물을 쳐보내듯이 갈밭머리 해 어스름녘 마른 물꼬를 치려는지 돌아갈 줄 모르는 한 마리 해오라기처럼... 먼 산 바래서서 아, 우리들의 적막한 마..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09.02.11
[스크랩] 부재 부재(不在) / 김춘수 어쩌다 바람이라도 와 흔들면 울타리는 슬픈 소리로 울었다. 맨드라미, 나팔꽃, 봉숭아 같은 것 철마다 피곤 소리 없이 저버렸다. 차운 한겨울에도 외롭게 햇살은 청석 섬돌 위에서 낮잠을 졸다 갔다. 할 일 없이 세월은 흘러만 가고 꿈결같이 사람들은 살다 죽었다.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09.02.11
[스크랩] 술 한 잔 / 정호승 술 한 잔 / 정호승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 번도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 꽃 소리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09.02.11
[스크랩] 이것 잔 봐 월매나 싱싱혀 이것 잔 봐 월매나 싱싱혀 - 조 찬 용 - 쏙 구녁은 맨들맨들허고 낙지 구녁은 까끌까끌하잖애 가슴에 치오르는 쓸쓸한 만큼의 긴 작업 옷을 입고 까끌까끌한 갯벌의 심장을 파 들어가야만 만날 수 있는 낙지의 숨소리 낙지의 숨소리와 그녀의 숨소리가 간격을 좁히는 사이 목으로 오르는 등 굽은 숨소..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09.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