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 2210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

. . 2007년, 노무현 정부가 끝날 무렵 나온 책. 주로 노무현정부의 실패를 질타하는 당시 진보 논객들의 생각을 대담 형식으로 구성한 책. 대담자는 박노자, 홍세화, 김규항, 한홍구, 심상정, 진중권, 손석춘이다. 13년의 세월이 지나는 사이 이명박근혜의 세월이 지났고 문통의 시절도 어느듯 끝이 보이는 지점이다. 세월은 정권뿐만 아니라 대담자들의 스탠스도 바뀌게 만들어 이들 7명 중 여럿은 그 무렵과 아주 다른 모습으로 현재에 서있다. 특히 진중권과 홍세화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는데 이 책을 통해 그 원인 또는 그들의 변명의 일면을 볼 수도 있다. '빠 문화' 의 부작용 및 비역사적 가치에 대한 조명은 현재 시점에서도 유용한 논점이라 생각된다. 노빠가 노무현정부를 망쳤고 문파가 현재 문통에게 힘 보다는..

도쿄 오아시스

. . 내일 김장을 위해 속으로 넣을 야채를 다듬고 무우를 씻고 김치통과 다라이, 소쿠리를 씻고 찹쌀풀도 쑤고.. 늦은 점심으로 식빵조각에 커피 한 잔씩하며 수상한 영화를 본다. 굳이 찾아보는 고바야시 사토미가 나오는 영화. 캄캄한 밤에 모르는 사람의 차를 얻어 타고 고속도로를 달린다. 아침이 밝아오는 해변에 닿을 때까지 혼자 영화관을 찾아 영화를 보다 잠든다. 깨우는 누군가는 어느 시절 알았던 이. 각자 혼자였는데 떠나고 보니 곁에 있었던, 아는 사람이 된 사람. 동물원에서 길을 잃은 적 있던 곳에서 만난 길 잃은 사람. 아무 위로도 되지 못하지만 곁에는 늘 누군가가 있고 그 의미 흐린 곁으로 인해 삶이 지탱되는 인생이라는 타인과의 걸음. 이라고 영화는 말하는 듯. 사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법정스님의 의자

. 멸치를 다듬는 시간 김장 준비를 위해 오늘은 성경 읽기 쓰기 대신 멸치를 다듬는다. 꾸득꾸득 말린 멸치 등을 눌러 갈라 내장을 꺼낸다 바다를 떠난지 오래 삶기고 말려진 목숨들 속을 비운다 아직도 부족해 다싯물로 마저 뽑히기 위해 문드러진 육신으로 떠나기 위해 멸치는 제 속을 비운다 새까맣게 텔레비전에서 법정스님 의자를 본다. 요즘 시끄러운 잘난 스님들 그도 못지않게 잘났으니 뭐라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든가 말던가 댓돌 위엔 떠난 스님 고무신만 남았고 내앞엔 한 무더기 멸치 똥만 남았다. 201120

멸치를 다듬는 시간

. 멸치를 다듬는 시간 김장 준비를 위해 오늘은 성경 읽기 쓰기 대신 멸치를 다듬는다. 꾸득꾸득 말린 멸치 등을 눌러 갈라 내장을 꺼낸다 바다를 떠난지 오래 삶기고 말려진 목숨들 속을 비운다 아직도 부족해 다싯물로 마저 뽑히기 위해 문드러진 육신으로 떠나기 위해 멸치는 제 속을 비운다 새까맣게 텔레비전에서 법정스님 의자를 본다. 요즘 시끄러운 잘난 스님들 그도 못지않게 잘났으니 뭐라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든가 말던가 댓돌 위엔 떠난 스님 고무신만 남았고 내앞엔 한 무더기 멸치 똥만 남았다. 201120

어느 가족 / 고레에다 히로카즈

. 칸 황금종려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영화 시리즈의 완결판 같은 영화. 부숴진 사람들이 만나 한 데 뭉쳐 사는 가족. 그러나 가족이 아닌. 그러면서 가족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 가족이 될 수 없어 더 가족 같은 사람들. 흩어지면서 사랑을 확인하는 가족 아닌 가족들. 2018년 일본. 그림자 속에 찢어진 사람들. 그러나 가족들. '무엇을 보여주지 않는가. 무엇을 이야기 하지 않는가'에 도전하는 것이 감독이 추구하는 영화. 정말 그런 영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지만 그저 가슴이 아픈 영화. 일본 국민 할머니 배우 키키 키린이 영화 속에서 죽고 얼마 후 정말 죽은 영화.

아무것도 안 하는 날 / 김선우

. . 오늘 여기는 경유지가 아니다. 여기를 저 높은 문을 위해 인내해야 하는 경유지라고 말하는 어른들이 있다면 침묵할 것을 요청한다. 나는 내 책상 위에 최선을 다해 오늘의 꽃과 태양을 그린다. 여기는 내일로 가는 경유지가 아니다. 나는 날마다 꽃핀다. 내 말을 완전히 이해하는 나의 태양과 함께. 다른 사람이 보기에 덜 핀 꽃이어도 나는 여기에서 완전하다. -단비. 2018 김선우시인의 시를 읽어보자.. 주문을 한 시집은.. 청소년을 위한 시집이었다. 다 읽고 나니 마음이 아리다. 우리 아이들, 힘든 아이들. 시인은 대단하다. 어찌 저 마음을 다 알고 있을까? 연두엄마, 징구리엄마.. 한 권씩 사서 읽어보셔. 나도 이 시집 잘 싸서 대구 사는 조카한테 보낼까 한다. 녀석이 힘들다는데, 뭐라도 도와줘야 ..

미드웨이

. . 미드웨이를 보고 욕망과 (허위) 영화를 보며 생각한 두 단어다. 태평양전쟁 미드웨이야 오래 전 버전으로 본 적이 있고 새롭게 스펙타클을 더해 볼만하다고 하지만 결국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 아메리칸 드림, 팍스 아메리카나를 고양하는 웅변 밖에 메시지는 없다. 그래도 재미 있는 건 오감을 자극하는 영화 쟝르의 미덕이다. 전쟁 영화는 참 오랜만에 봤다. 사실 이런 영화를 좋아한다. 아무 생각없이 두 시간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 로맨틱 코미디나 무협, 갱스터, 에로 영화도 마찬가지다. 재미있는데 왜 자주 안보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좀 민망하다. 깊이가 없어서, 너무 상업적이어서, 인생에 별 도움이 안돼서 같은 이유를 떠올려 본다. 돌려말할 것 없이 폼나지 않아서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횡단 / 이수명

. . 몇 년만에 다시 이 책을 읽는다. 그때는 어려웠다. 지금은 좀 더 많이 이해하길 기대한다. '詩는 소통하지 않음으로써 소통하는 것이다. 소통으로부터 도피함으로써, 관계 맺고자 하지 않음으로써, 거리를 둠으로써, 그 결과 전 시간적이고 전방향적인, 우주적인 접촉을 시도한다. 스스로 멀어짐으로써, 타자의 이해를 구하지 않음으로써,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 인간과 자연,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직접적이고 내밀한 소통을 하는 것이 詩이다. 이것은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소통이다. 詩가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지 못하고 외부로의 소통을 겨냥한다면, 사실 그것은 웅변이나 논설보다 지리하고 효과도 떨어진다. 또 소통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다면 그것은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일정한 그룹이나 소수의 구성원들과의 ..

떠난 이에게 건네는 축하

. 떠난 이에게 건네는 축하 오늘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생일이다. 오십 며칠을 채웠다면 저녁에 온 가족이 모여 여든여덟 축하를 드렸을 것이다. 주말에 담글 김장 이야기를 나누며. 그 두 달 남짓을 기다리지 못하고 떠나신 어머니의 생일은 이제 아무도 축하하지 않는다. 그저 맏이인 탓에 관성처럼 기억을 하고 있는 나만 빈 집을 생각하고 있을뿐. 죽은 이의 생일이란 어떤 의미인가. 태어났으니 죽을 수 있다는 자각 같은 정도인가. 하지만 그 거리가 이처럼 가까울 때는 좀 난처하다. 거리는 나를 낳아준, 한 몸이 분열된, 또다른 내가 어머니라는 혈육의 거리도 있고 불과 얼마전까지 찾아가면 얼굴을 볼 수 있었고 전화를 걸면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었다는 시간의 거리도 있다. 실감이라는 말이 있다. 며칠 전 꿈에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