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 2210

송년 일상

. 송년 일상 변함없이 아침 여섯시반에 일어나 십분 스트레칭, 시리얼 한 컵 먹고 성경 두 장 읽고 한 장 쓰고 잠깐 묵상. 라디오에선 바흐의 무반주 첼로가 흐르고 커피 한 잔 마시며 꽃 한 송이 올린다. 네루다의 시 두 편, 이름 모르는 젊은 시인들의 시 두 편, 모파상의 단편 한 편, 짧은 수필 한 편을 읽고 김소연시인의 마음 사전 한 꼭지를 읽으며 하루 첫 두 시간을 시작한다. 조금 있으면 노트북에선 주식거래가 시작될 것이고 강아지는 늦잠을 잘 터. 하루는 오늘도 느리게 갈 것이고 여전히 외출은 없다. 둘째가 좋은 의자를 보냈다. 가능하면 침대에 눕지 않고 책상에서 하루를 보내고자 하는 입장에서 큰 도음이 된다. 오후에는 미뤄뒀던 그림을 다시 시작하고 러시안 스프를 끓이며 영화도 한 편 볼 작정. ..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 장석남

. 유곽 앞에 서 있던 오동나무처럼 알고보니 그곳은 유곽이었다 대낮이었으므로 적적했다 서둘러 빠져나오다 뒤돌아보고 어쩌다 나는 무엇하러 이곳까지 왔던가 다시 뒤돌아보고 일어선 돌부리에 걸려 휘청했다 잠시 얼굴도 닫고 근처 구멍가게 평상 모퉁이에 앉았다 나는 지금 어느 후미진 生을 빠져나온 듯 바카스라도 한 병 마실까? 발치에 다가오는 그림자 한 자락 평상 뒤에 오동나무 한 주 서 있다 누군가 맡긴 수많은 심장들을 펄럭이며 서서 내 심장을 보여달란다 벌써 무릎까지 올라온 심장 그림자 한 자락 낯설고 눈부신 노래를 눈으로 불러 심장을 주고 일어서니 내내 내 一生은 그 유곽 앞에 서 있던 오동나무처럼 가련히 아무데서고 서 있는 거였다. -장석남 .2001. 창비. -------------------------..

첫 집

. 첫 집 엄동설한에 화장실 수리한다고 해서 강아지랑 큰 딸집으로 대피. 35년전. 대학 졸업하고 서울에 취직해서 처음 독립살이를 위해 얻은 집은 이대앞 염리동 언덕받이에 있는 세탁소집 문간방이었다. 화장실도 주방도 없는 방문 열면 바로 대문이고 연탄 아궁이 하나 달랑 있던 그 방 생각이 난다. 주인 아저씨 이름이 임재덕. 나하고 이름이 같아 밤에 친구들이 대문 밖에서 날 부르면 아저씨가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는 그 집, 그 방. 옆 방에는 술집 나가는 아가씨와 소매치기 남자 친구가 살고 있었는데 사는 동안 단 한 마디 말도 서로 나눈 적 없었다. 임대 행복아파트지만 반듯하게 새로 지은 아파트에서 독립한 삶을 살고 있는 딸 집에 종일 누워 있으니 그 시절 생각도 나고 바뀐 형편 생각도 난다. 내가 뭘 도와..

몽마르뜨 파파

. 은퇴한 미술선생이 청년시절 꿈이었던 몽마르트에서 그림 그리기를 이루는 모습. 다큐 영화제작 경험이 있는 아들이 촬영 편집했다는데.. 역시 부러운.. ㅎㅎ 내 청년시절 꿈은 뭐였더라? 시인? 소설가? 그런 건 아니었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한 두달 유럽여행을 해보고싶은 적 있었는데 그건 할 수 있지 않을까? #몽마르뜨파파

선한 자에 대한 심문 / 베르톨트 브레히트

. 선한 자에 대한 심문 . . 앞으로 나오라, 우리는 그대가 좋은 사람이라고 들었다. 그대는 매수되지 않지만, 집을 내리치는 번개 또한 매수되지 않는다. 그대는 그대가 했던 말을 지켰다. 그러나 어떤 말을 했는가? 그대는 정직하고, 자기 의견을 말한다. 어떤 의견인가? 그대는 용감하다. 누구에게 대항하는 용기인가? 그대는 현명하다. 누구를 위한 현명함인가? 그대는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돌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대는 누구의 이익을 돌보는가? 그대는 좋은 친구이다. 그대는 좋은 사람들에게도 좋은 친구인가? 이제 우리의 말을 들으라, 우리는 그대가 우리의 적임을 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이제 그대를 벽앞에 세우리라. 그러나 그대의 미덕과 장점들을 고려하여 우리는 그대를 좋은 벽 앞에 세우고 그대를 좋은 ..

충만한 힘 /파블로 네루다

. . 충만한 힘 나는 쓴다 밝은 햇빛 속에서, 사람들 넘치는 거리에서, 만조 때, 내가 노래할 수 있는 곳에서; 제멋대로인 밤이 나를 억누르지만, 허나 그것의 방해로 나는 공간을 되찾고, 오래가는 그늘들을 모은다 밤의 검은 작물은 자란다 내 눈이 평야를 측량하는 동안, 그리하여, 태양으로만, 나는 열쇠들을 벼린다 불충분한 빛 속에서는 자물쇠를 찾으며 바다로 가는 부숴진 문들을 열어놓는다 찬장을 거품으로 채울 때까지 나는 가고 돌아오는데 지치는 법이 없고. 돌 모양의 죽음은 나를 막지 못하며, 존재에도 비존재에도 싫증나지 않는다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내 모든 광물성의 의무를 어디에서 물려받았을까- 아버지나 어머니일까 아니면 산들일까, 생명줄들이 불타는 바다로부터 펼쳐진다; 그리고 나는 안다 내가 계속 가..

아버지와 이토씨 / 타나다 유키

. 딸이 혼자 남은 성격 괴팍한 아버지를 모시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들을 소소하게 그린 영화인데.. 이제는 우리 주변에 너무 흔한 가족 관계 해체 또는 갈등의 이야기라 오히려 등장인물들의 묘한 개성들이 이미지로 남는다. 가족간의 사랑과 의무, 책임 등등..뒤에 얼굴을 감싼 고통이 있다는 사실. 사랑만으로는 해결 할 수 없어 때로는 이기심과 위선과 허세와 거짓을 쓸 수 밖에 없는 현실. 그 엄연한 현실. 나이가 먹은 탓에 애 쓰는 딸의 눈물보다 결연히 떠나고자 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에 눈길이 더 따라가는.. '나는 당신을 떠나지 않는다.'는 이토의 말을 듣고 '나도 당신을 떠나지 않겠다' 는 마음을 얻은 아야가 떠나가는 아버지를 향해 웃으며 달려가는 마지막 장면.. 그런 희망. #아버지와이토씨 #타나다유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