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 2210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 . 이란 어딘가 황토빛 고원 위의 마을. 100세 노파의 죽음을 만나러 온 한 사내 베흐자드. 그곁을 맴도는 파자드라는 아이. 한적하지만 부산한 마을 풍경 속에서 사내는 며칠을 지낸다. 소소한 일상만을 화면에 쏟으며. 핸드폰이 울리면 차를 몰고 언덕으로 달려가고 할머니는 그만저만 버틴다. 파자드는 계속 시험기간이고.. 누군가는 매일 땅을 파며 사랑을 이야기 하고 어떤 여자는 열번째 아이를 낳고 아이들은 베흐자드가 차를 몰고 빠져나온 흙벽돌로 쌓은 마을 입구를 양을 몰고 나선다. 반복, 반복되는 낯 선 곳에서의 일상들. 길에는 흙먼지만 일고.. '자연을 바라보는게 주사위 놀이 하거나 아무 것도 안하는 것보다 낫지.' '꿈같은 약속보다 지금이 좋다네.' 한 사람의 죽음을 독촉 받으며 기다리다 또 다른 죽..

생각의 즐거움 / 에드거 앨런 포

. . 저녁별 한여름 한밤중이었네. 별들은 궤도에서 더 밝고 차가운 달빛 사이로 창백하게 빛나고 있었고, 달은 하늘 높이 자신의 시녀인 행성들 사이에서 파도에 빛을 뿌리고 있었네. 나는 잠시 그 차가운 미소를 바라보았네. 내게는 너무나도 차가왔네. 거기 수의처럼 양털구름이 지나갔네. 나는 그대 쪽으로 몸을 돌렸네. 자랑스러운 저녁별이여. 멀리서 빛나는 그대의 빛이 가장 소중하구나. 그대가 밤하늘에서 맡는 자랑스러운 역할은 나의 기쁨이로다. 나는 그대의 먼 불빛을 차갑고, 천한 빛보다 더 찬미하노라. Evening Star Twas noontide of summer, And mid-time of night; And stars, in their orbits, Shone pale, thro' the light..

성경 쓰기

. 성경 쓰기 몇 년째 아침이면 컴을 켜고 성경을 한 장씩 쓴다(?타이핑 한다) 이건 그저 평생을 교회에 다닌 내게 내가 준 숙제이다. 지금까지 성경은 적어도 열댓 번은 읽었을 것이다. 50년 동안 열댓 번이면 별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신에 대한 나의 신뢰는 쉽게 흔들린다. 한 달 수입보다 무겁지 못할 때가 많다. 죽을 때까지 이 신뢰의 미진함과 좁혀지지 않는 거리는 그대로일지 모른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그것이 이 숙제를 묵묵히 하는 이유다. 당신이 죽을 때까지 꼭 달성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초월자와 나의 관계를 알고싶고 좋은 시 한 편을 남기고 싶고 내 아내가 여한 없는 행복의 순간을 누리게 해주고 싶다. 이제 성경 66권중에 65% 정도를 썼다. 시간이 오래 걸릴듯 하니 아껴 써야..

시간 죽이기

. . 시간 죽이기 쌓인 시간이 제법 부담스럽다는 걸 요즘 느낀다. 시간이 없다. 너무 바쁘다 하는 말은 살면서 그리 많이 해보지 않았다. 일하는 손이 좀 빠른 편이기도 하고 천부적인 게으름이 일 자체를 많이 만들지 않는 탓도 있다. 평생 계획을 세우고 그 틀안에서 움직여야 불안하지 않은 소심함도 한 몫했을 것이다. 어쨌든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는 상황은 내 평생에 손에 꼽을 정도였을 것이다. 두 달 반. 칩거하면서 빈 집에는 시간이 넘친다. 가끔 약속이 있어 나가기도 하지만 일 주일에 닷새 정도는 집콕이다. 그러다보니 널린 시간의 무게와 싸우는 일이 제일 큰 일이 되었다. 내가 시간과 싸우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시간을 잘게 썰어 조금씩 소모하는 전략이다. 깨어 있는 하루를 한 시간 단위로 잘라 ..

호랑이 발자국 / 손택수

. . . 墨竹 습자지처럼 얇게 쌓인 숫눈 위로 소쿠리 장수 할머니가 담양 오일장을 가면 할머니가 걸어간 길만 녹아 읍내 장터까지 긴 墨竹을 친다 아침해가 나자 질척이는 먹물이 눈 속으로 스며들어 짙은 농담을 이루고 눈 속에 잠들어 있던 댓이파리 발자국들도 무리지어 얇은 종이 위로 돋아나고 어린 나는 창틀에 베껴 그린 그림 한 장 끼워놓고 싸륵싸륵 눈 녹는 소리를 듣는다 대나무 허리가 우지끈 부러지지 않을 만큼 꼭 그만큼씩만, 눈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 손택수 시인의 첫 시집. 아버지가 참 많다. 가난한 집과 사람들이 많다. 처음 보는 고운 우리 말도 많고 설움도 정겨운 풍경도 많다. 첫 시집이어서일까, 끝이 괜히 무겁거나 깃털..

내가 사랑하는 시 / 피천득 엮음

.. . 음주飮酒 - 제5수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에 작은 집 한 채를 마련한다 그러나 마차나 말울음 소리는 없다 그럴 수가 있냐고 물을 것이다 마음이 떨어져 있으면 땅도 자연히 멀다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자르다가 유연히 남산을 바라본다 산 공기가 석양에 맑다 날던 새들 떼지어 제 집으로 돌아온다 여기에 진정한 의미가 있으니 말하려 하다 이미 그 말을 잊었노라 - 도연명 陶淵命 (365~427) 오래전부터 나이가 들면 시골에 가서 살리라 마음 먹었다. 막상 그 나이 턱밑에 닿고보니 쉬운 일이 아니다. 전원 속의 삶이란 다분히 환상이다. 그곳에는 내가 모르는 치열한 삶과 노동이 있고 대부분 부실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밖이다. 방법은 지금 내 사는 곳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라 이 옛적 전원시인이 ..

여덟시에 떠나는 두 편의 기차

. . 여덟시에 떠나는 두 편의 기차 몇 년 전 택시운전을 할 때의 일이다. 한 주간씩 번갈아 주간근무와 야간근무를 교차해야 했다. 일주일 단위로 밤낮이 바뀌는 생활은 하루 열시간 이상 운전을 해야하는 고됨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특히 야간근무의 경우 오후 다섯 시에 집을 나서 꼬박 밤을 새워 운전을 하고 다음날 새벽 여섯시쯤에 집으로 돌아오면 온몸은 녹초가 됐었다. 바로 잠을 자야 오후에 다시 일을 나갈 수 있지만 피로와 각성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아침에 쉬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결국 간단한 조반에 소주를 몇 잔 곁들여 각성을 무디게 만들어야 잠이 들 수 있었다. 이런 저런 힘듬 덕분에 일년반 정도의 택시 운전수 노릇은 몸무게의 10% 정도를 덜어낼 정도로 만만찮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 혹독한 밥벌이의..

길가메시 /윤정모

. . 구약 성경 신화의 뿌리라고 알려져 있는 길가메시 서사를 읽어야겠다 마음 먹은 지는 오래 됐다. 우선 순위에 밀려 차일피일 미루다 얼마전 알라딘에서 책을 고르다 그 지연이 떠올랐다. 바로 검색을 했고 이 책을 샀다. 결과는 착오였다. 이 책은 길가메시서사를 모티브로 한 윤정모의 장편소설이었다. 헛웃음이 났지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서사로 이루어진 신화란 얼마나 읽기 불편한 쟝르인가. 그걸 탁월한 소설가가 다듬어 놨으니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윤정모 정도의 작가정신이라면 원전을 왜곡하지도 않을 것이고..

손목

. 손목 주말에 잠깐 일탈 떠났다 삐긋 손목에 탈이 났다 가만 있으면 괜찮은데 뭔가를 들어올리려면 아프다 목이라는 이름 팔목 발목 손목 (머리)목 어디론가 가는 길목들은 제방향에서 모질게 어긋나면 아프다 한 이틀 조신하게 살펴보고 시원찮으면 병원에 가자 생각중이다 다음 주 김장 울력인데 그때까지 안나으면 마눌한테 민폐다 손에게도 팔목에게도 길목을 불편하게 해서 미안타 20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