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감기 가을 감기 2010. 9. 27 낮의 길이로 꽃 피울 시기를 안다는 봄날의 나무들 태양이 기우는 모습으로 잎을 물들일 시간을 가늠한다는 가을날의 나무들 그렇게 천천히 하루하루를 바꾸어 가는 나무들의 지혜에 비하면 어저께까지 숨 헐떡이다 오늘 당장 발목 시려 당황하는 내 몸뚱아리 불쑥 .. 詩舍廊/~2021습작 2010.09.27
정체(停滯) 정체(停滯) 2010. 9. 13 잊혀졌던 詩를 이야기하고 돌아오는 경수대로에서 詩를 다시 만나겠노라 세상을 정리하고 돌아선 길에 항문에 술과 詩가 엉켜 대장암 선고를 받았다는 시인 선배, 내 어설픈 詩가 바라보던 깃발처럼 펄럭이던 선배의 詩가 쏟아지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 마흔.. 詩舍廊/~2021습작 2010.09.13
가난 가난 2010. 9. 6 책을 읽다가 남은 거리가 얼마 없음을 본다 새 읽을 거리를 서둘러 주문하고 다시 책을 들다 몇 쪽 못 넘기고 갈피 끼워 덮는다 새 책이 오기까지 닷새 그 동안을 위해 읽을 거리를 아껴 놓아야 하는 아, 나의 가난이여 詩舍廊/~2021습작 2010.09.06
안간 힘 안간 힘 2010. 11. 1 밤새 도시는 멀리서 온 바람에 시달렸다 불빛을 찾아 창문이 젖은 벽을 굴착하고 어둠은 비에 찢겨 비명처럼 연기처럼 치솟았다 날이 밝아도 도시는 여전히 흔들린다 비틀거리는거리들이 쏟아지는 아침엔 아무렇게나 부숴진 바람 조각들이 가득하다 꽉 막힌 두려움이 .. 詩舍廊/~2021습작 2010.09.02
열대야 열대야 2010. 8. 20 새벽 두시 늦은 맥주 한 잔이 끓어 올라 겨우 든 잠이 땀흘리며 깬다. 밀폐된 어둠의 배설 땀으로 쏟아지는 각성. 우르르 분출하는목덜미. 숨 가쁜 낡은 선풍기가 혼자 어둠을 젓고 있지만 흔적도 없는 태양의 그림자는 느리고도 잔인한 융합을 멈추지 않는다. 입 벌린채 .. 詩舍廊/~2021습작 2010.08.20
M 31 M 31 2010. 10. 15 비 그친 여름날 그믐밤엔 하늘 넓은 주천강에 발목 담고 방금 도착한 옛날을 만나보렴 달이 태양 빛을 되비추듯 모든 별은 그저 거울처럼 의무처럼 빛난다 생각한 적이 있었단다 그게 아니래 저기 캄캄한 하늘 정수리께에 유난히 하얗게 반짝 반짝이는 별 하나 보이니 안드.. 詩舍廊/~2021습작 2010.08.05
다시 두메지에서 다시 두메지에서 2010. 8.23 바짝 마른 생각을 두고 오겠노라 모질게 떠난 두메지 한 여름의 태양은 구름에 가리워 눅진해져버리고 연푸른 육지를 향해 드리운 대 새빨간 눈으로 까딱대는 동안 소주로 젖은 밤을 마신다 친구들이여 시간은 어디로 갔는가 생각은 어디로 갔는가 도무지 사라.. 詩舍廊/~2021습작 2010.07.31
물을 걷다.. 물을 걷다 2010. 8. 16 칠월말 고지서 같은 휴가길에 무겁게 걷는 생각을 만났다 여름비 부숴지는 호수 시간은 물살을 거슬러 흐르고 비지땀처럼 스며나는 것은 걸어온 길인가 남은 길인가 다 자란 아이들과 함께 걷는 아내의 젖은 어깨를 만났다 詩舍廊/~2021습작 2010.07.31
간송미술관 간송미술관 2010. 7. 21 하늘이 익어가는 초복날 오후 오래된 소문을 따라 성북동을 찾았다 묵은 고갯 길에 호젓히 자리한다는 메모 하나만 들고 성북동 고갯길을 몇번이고 비둘기처럼 돌았다 심우정이며 길상사며 삼청각이며 낯익은 이름들로 가득한 성북동 길 아무리 돌아도 소문은 나타.. 詩舍廊/~2021습작 2010.07.21
1989 모스크바 1989 모스크바 2010. 7. 15 빈 담배갑을 버리다 구겨진 은박지에서 그날 밤 모스크바를 떠올리는 건 도대체 무슨 일인가 국경도 열리지 않았던 두려움의 도시 모스크바 도무지 어두워지지 않던 백야의 아르바트 거리 노린내 짙은 슬라브 여인과 싸구려 꼬냑을 사이드 미러 부러진 택시에 싣.. 詩舍廊/~2021습작 2010.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