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리고 불현듯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아주 오래 전 그리고 다시 그리지 않은 모르는 포구와 기운 배 한 척 그리고 색칠은 하지 않았다 희미한 바다도 먼 섬 하나도 한 때 그리고 있으면 시간이 멈추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생각도 아직은 멈추지 않아 그리고 멈췄다 멀지 않아 멈추고 싶을 때 그리며 멈추면 될 일이다 그리고 반드시 색을 다 칠해야 그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좀 전에 난 멈췄었는 지도 모른다 200517 詩舍廊/~2021습작 2020.05.17
자유 자유를 향하여 오늘도 나는 거푸 두 대의 담배를 피고 침묵의 육십 킬로미터를 달려 파주에 닿고 컴퓨터를 켜 요한계시록을 쓰고 짧은 구복 求福의 기도를 했다 젊은 시인의 시 두 편 선배 시인의 시 두 편 싫어하는 시인의 시 두 편 좋아하는 시인의 시 두 편을 읽고 읽기가 무서운 레이.. 詩舍廊/~2021습작 2020.05.13
대응 대응 적당히 쓰다 버릴 사람 이라고 누가 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요령껏 적당히 쓰여지다가 버려지기 전에 먼저 버리고 나오면 되지 않을까? 문제는 타이밍 일하는 척 놀면서 튈 다른 곳을 준비해두고 그의 입술이 열리기 전에 먼저 마음이 좀 편해지는가? 19110.. 詩舍廊/~2021습작 2020.05.13
191109 191109 베지밀 B 이 년 만에 본 장모는 피식 웃는 눈만 남았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도무지 오지 않는 죽음을 기다리는 일 밥도 죽도 다 싫고 겨우 먹는게 베지밀 B 그것도 A는 싫고 달달한 B만 넘어 간다네 왔나? 조심해서 가라. 그 사이에 베지밀 B 두 박스 남겨놓고 돌아왔는데 자꾸 그 퀭.. 詩舍廊/~2021습작 2020.05.13
191116 섬 191116 섬 모두들 바쁜 주말 근무 혼자 일 없이 이 책 저 책 뒤지고 인터넷이나 헤맨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일이 있고 나에겐 그들만큼의 일이 없으니 우두커니 책상만 지킨다 이 섬에 산 지도 벌써 육 개월 절반쯤은 행복하고 절반쯤은 불안하다 아침 저녁 운전만 댓 시간 하면 종일 대기만 .. 詩舍廊/~2021습작 2020.05.13
체념 체념 레이몬드 카바의 소설 속 리볼버 권총을 겨눈 여자에 대해 읽다가 문득 삼십 년 전쯤 술집에서 선배에게 무차별로 두들겨 맞았던 밤이 떠오른다 내가 무슨 말로 선배를 조롱했고 그는 나를 엄청나게 때렸 는데 나는 점잖게 앉아 그 주먹질을 고스란히 감당했다 입술이 터지 고 눈두.. 詩舍廊/~2021습작 2020.05.13
어스름의 윤곽 어스름의 윤곽 이 시간을 좋아한다 하루 치의 빛이 마지막으로 빛나는 저물기 전 여기저기 돌아보는 시선이 닿는 시간 넘치는 것들이 넘치기 전에 잔뜩 맺힌 코발트 빛 망설임 곧 모두 지워지겠지만 꺼지기 전의 촛불처럼 맑게 부릅 뜨고 바라보는 윤곽 이 시간을 좋아한다 200505 詩舍廊/~2021습작 2020.05.05
定期購讀 定期購讀 정기구독은 늘 숙제로 남는다 뭐든 다 그렇다 신입 월급쟁이 때 '매일 일본어'라든지 억지로 떠맡은 시사주간지 월간 낚시 굳이 찾아서 구독신청한 문예지 다 그렇다 그저 작정할 때만 잠시 훌륭한 독자의 가능성으로 존재할뿐 석 달만 지나면 어김없이 쫓긴다 한 달에 몇 편 소.. 詩舍廊/~2021습작 2020.05.04
흐린 날 흐린 날 이상한 날이다. 잔뜩 흐린(이 표현은 적절치 않은데 다르게 말할 재주가 없다.) 날씨와 마음의 싱크로율이 높다. 사무실 베란다 의자에 앉아 회색 슬라브와 그 위로 의뭉스럽게 드리워진 회색 하늘을 바라본다. 눈에서 회색 눈물이 흐를 것만 같다. 셔츠안의 몸뚱이는 뜨겁고 목덜.. 詩舍廊/~2021습작 2020.05.02
똔똔 똔똔 곰곰 따져보니 버는 돈과 나가는 돈이 거의 같다 안 들던 하루 120킬로 기름값이 크다 더 줄일 덴 안보이니 운신을 줄일 수밖에 없겠다 움직이지 않으면 돈 쓸 일도 주는 법 이래저래 들어앉아 책이나 읽을 팔자다 200422 詩舍廊/~2021습작 2020.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