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2021습작 498

사각사각

. . 사각사각 사각사각 눈을 뜨며 사각형 침대에서 나를 꺼낸다 사각형 갑에서 담배를 꺼내 피고 사각형 테블릿에서 음악을 흘린다 사각형 노트북에선 사각형 성경이 나오고 사각형 책상에 앉아 사각형 시집을 펼친다 사각형을 마저 채우지 못해 詩인 詩들 사각형 문을 지나 사각형 머신에서 커피를 내리고 다시 사각형 책상 앞에 사각형 벽에 붙은 사각형 계획들 사각형 시간에 따라 사각형으로 실천한다 사각형의 하루가 직각으로 꺽이며 조금씩 완성된다 사각형 현관을 나서 사각형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각형 아파트를 나설 것이다 사각형 식탁에 앉아 사각형으로 한 잔 하기 위해 사각형으로 친구들은 모일 것이고 사각형 태양이 서쪽 아래로 저물 때 사각형을 구기며 우리는 일찍 취할 터 사각형이 쓰러지지 않도록 한 변이 허물어지면 사..

어떤 출근

. 어떤 출근 침대에서 일어나 한 걸음이면 출근이다 일곱 시 출근 오전에 다섯 시간 오후에 두 시간 책상에 앉아 일(?)한다. 나름 바쁘다. 일곱 권의 책을 나눠 읽고 뭔가를 쓰고 쉬는 시간에 커피도 마시고 업무 시작 전과 점심시간에는 가벼운 운동도 한다. 집에 있은 지 대략 50일. 그 사이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빈 깡통같은 추석이 지나갔다. 지금은 가을이 가슴께까지 왔고 오전 실업 근무를 마칠 시간이다. #詩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사육

. 사육 레이먼드커버의 단편을 읽다 개를 버리는 앨이라는 남자를 만났다 커버는 상실 중인 앨을 내게 이야기 했지만 내게는 개를 버리는 앨만 들린다 앨은 여러번 망설이다 키우던 암캐 수지를 먼 곳에 버린다 차 뒷문을 열고 먹이를 창밖에 던지고 등을 떠밀어 수지를 내보낸 뒤 차를 몰고 달아난다 이쯤을 읽을 때 내 호흡은 급해진다 개를 버리다니 가족을 버리다니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책을 덮고 뒤를 돌아보면 침대 내 자리에 드러누운 강아지가 있다 새카만 눈으로 그래 그렇게 생각하는게 맞어 잘했으니 간식 하나 줄까? 라고 말하고 있다 201007

시인들

. . 시인들 살면서 만난 시인 몇 안된다 나이들어 뵌 까마득한 고등학교 문예부 선배님들 문인수, 이하석, 배창환, 오정국, 박상봉시인 피맛골 시인통신에서 본 김신용시인 시 배우다 만난 김경주, 한경용시인 어릴적부터 보다 시인이 되는 모습을 본 이병철시인 책방에 찾아가서 본 김이듬시인 신인상 받느라 만난 전형철시인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시인들이 내 평생에 만난 전부다 아무도 나하고 술 한 잔하며 시인인 양 시인들의 풍경을 만들어 줄 순 없는 시인들이다 오래 시를 쓰며 좋은 시를 사모하는만큼 시인들을 사모하게 됐지만 그건 어쩌면 시인 대접을 받고싶어하는 삿된 마음이었을 것이다 시인들끼리 만나 술을 마시고 추억을 만들고 객기를 쌓는, 낡고 바랜 그 낭만의 풍경을 누가 그리워하게 만들었을까 고개 돌리면 창..

멸치볶음

. 멸치볶음 내 아버지 제삿날 네 아버지 생각나고 내 어머니 걱정하면 네 어머니 생각나는 일 어쩌면 당연하지 하는 말 들리는 말마다 작은 종지 안 엉긴 잔 멸치 제각기 바라보는 만 가지 표정 떼로 헤엄쳤어도 지느러미는 다른 물결이지 그래도 왜 날 보지 않나 하지 소주 한 잔 따르고 엉긴 멸치 볶음 젓가락으로 떼며 생각한다 너를 향한 표정이어야 하는데 아무리 헤집어도 멸치볶음 한 방향이 되지않아 떨어지지도 않아 200823

. . 똥 부끄러웠을까 58년 만에 처음 보여준 하초는 똥으로 칠갑이 되어 있었다 닦고 닦아도 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침대에 올려다오 그 한 마디를 끝으로 긴 잠에 빠졌다 그런 줄 알았다 깨지 않았다 지금은 응급실 다시 깨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의사의 말 왜 갑자기 잠들었을까 잠들고 싶었을지 모른다 영영 깨어나지 말았으면 생각했을지 모른다 똥이 뭐라고 내 똥을 얼마나 치웠을텐데 그게 뭐라고 안 깨어나시는가 엄마 200923

무서운 겨울

. . 무서운 겨울 구월인데 추석도 보름이나 남았는데 먼 겨울이 무섭네 추위도, 폭설도 한 번도 무서운 적 없었는데 올 겨울은 무섭네 낙상한 어머니 몸 부숴지는 소리 듣고 있으니 겨울이 몰려오는 것 같네 오래된 고비는 늘 그 문턱에 걸리곤 한다는데 옻칠 한 겨울을 넘어 한 줌 숨 다시 모을 수 있을까 봄 될 수 있을까 이번 겨울이 자꾸 무섭네 200914

붕어 입술

. . 붕어 입술 초가을 과림저수지 손맛터 이만 원씩 내고 정사각형으로 포위한 꾼들 붕어를 뽑는다 기껏 잡아선 손맛 보고 얼굴 한 번 보고 다시 집어넣는다 여덟 치 붕어 한마리 걸렸다 얼마나 바늘이 들락거렸나 입술이 문드러졌다 몇 번이나 물밖으로 끌려나와도 입맛을 기억하고 있는 입술* 지긋지긋한 생명이라니 정사각형 무간지옥으로 돌려보내며 내 입술을 쓸어본다 너덜너덜 뭉게진 생계를 뽑아내더니 누군가 등을 떠민다 정사각형 깊은 어둠속으로 초가을 서울특별시 손맛터 * 최승자의 시 '셔발 슐로스' 인용.

아르곤 여행

아르곤 여행 4% 남은 네안데르탈 스타일 숙녀의 부끄러움이 들어온다 그녀는 상기도를 지나며 도연명의 취기와 손바닥을 마주치며 지나간다 팽목에서 외쳤던 고함이 어깨를 적셨다 체게바라의 담배연기를 헤치고 직하한다 뒤따라 쏟아지는 조금 전 그리고 페름이 섞인 물줄기들 섞인 시간들을 언제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나가는 지금은 시간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처음은 가늠할 수 없으니 40억 년 전쯤이라 하자 억수같은 비는 그날에도 내렸을 것이고 해가 내리 쬐면 구름이 되기도 했을 터 더러는 깊은 땅속에 기억으로 묻히고 낡은 시간을 드나들기도 했으리 오늘 내 선 녹슨 창가에 몇 방울 비 내리고 먼지 한 점 튀어 날린다 먼 시간 전에 태어나 내 할아버지였다가 어린 날 내가 뱉은 재채기였던 것들 어제 내 곁에서 흘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