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마음으로 느린 마음으로 2010. 11. 24 내 주여, 사람들이 만든 껍질로 인해 당신을 바로 바라 볼 수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당신은 내 안에, 내 코끝의 공기 속에 그리고 저 잎지는 겨울 나무 가지에도 있건만 각진 십자가 견고한 욕심들이 당신을 가립니다 모서리에 부딪힌 내 어리석음은 자꾸만 고개를 땅으로 떨어.. 詩舍廊/시편 2010.11.24
겨울 맞이 겨울 맞이 2010. 11. 8 주여, 어젯밤에는 당신이 보낸 겨울이 왔습니다 어두운 인기척으로 창문을 두드리고 남은 가을들을 찬 비로 씻어내리며 당신은 한 계절을 걷고 새 겨울을 보내셨습니다 어깨 시린 아침 거리는 떠난 가을로 부산합니다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출발의 거리에서 내가 밀어낸 당신의.. 詩舍廊/시편 2010.11.08
그래도 걷게 하소서 그래도 걷게 하소서 2010. 11. 4 주여 나의 하늘이 이렇듯 서서히 어두워져 왔음을 이제서야 아프게 느낍니다 나란히 서서 반짝이다 멀찍이 앞서 가 빛나는 별들을 보며 초라한 발목을 쓰다듬습니다 다시 달려가 어깨를 나란히 할 시간은 제게 없습니다 무엇보다 나의 초라함은 이미 습관이 되었고 쓰러.. 詩舍廊/시편 2010.11.04
가을의 기도 가을의 기도 2010. 10. 25 주여, 손목 시린 가을이 왔습니다 당신이 뿌린 씨앗들이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우던 봄과 여름을 지나 이제 쉼을 향하는 가을이 왔습니다 당신이 뿌린 또 다른 씨앗 나에게도 가을이 왔습니다 지난 여름 뜨거운 햇살이나 쏟아지던 비처럼 나는 사랑을 또는 배반을 마셨습니다 뒷걸.. 詩舍廊/시편 2010.10.25
해 묵은 미안함 해 묵은 미안함 2009. 9. 14 나의 주여 당신의 이름을 너무나 오랜 만에 부릅니다 나의 유리(游離)는 당신의 축복 그리고 뚜렷한 이기심입니다 쓰러질 때 당신을 붙잡았던 시간들 그 아픔이 나를 키우고 일어나 다시 걸을 때 나의 자람은 재빨리 고개를 거두고 멈춥니다 나의 주여 불현듯 다기온 부끄러움.. 詩舍廊/시편 2009.09.14
아! 빌라도여. 아! 빌라도여, 2008. 3. 28 그가 다시 나타났다는 소문에 관한 보고가 왔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아리마대 요셉이란 자가 장사를 허가해 달라는 요청까지 하지 않았던가? 무덤 문이 열리고 시체가 사라졌다고 해서 그가 다시 살아났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되진 않았다. 그가 대.. 詩舍廊/시편 2008.03.28
말고 이야기 말고 이야기 2008. 3. 19 메마른 겟세마네 시몬의 칼이 나를 향했을 때 피흘리며 떨어져 나간 것은 죄 없는 내 귀였지요 어둠이 다가오고 바닥에 쓰러져 소리 숨지던 내 귀 내 몸을 떠난 슬픈 그 귀로 나는 분명히 들을 수 있었어요 피를 거두고 생명을 거두어 나를 다시 살리는 죽음을 향해 가는 그의 손.. 詩舍廊/시편 2008.03.19
낮게 내리신 주여 낮게 내리신 주여 2008. 3. 13 주여 오늘 아침 회색 강가에 낮게 다가 오신 당신을 봤습니다 종려주일 앞둔 마지막 사순절 기간 구레네 낯선 이에게 십자가 맡기시고 딛던 그 느린 걸음으로 오셨습니다 주여 슬픈 강물이 시간 위로 넘쳐 눈물처럼 스러지던 당신을 봤습니다 감람산 언덕에서 흘리신 절망.. 詩舍廊/시편 2008.03.13
가을 날 -- 릴케 가을 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정말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어 주십시오. 들에다 맑은 바람을 모아 주십시오. 마지막 열매를 익게 하시고, 남국의 햇빛을 이틀만 더 주시어 그것들을 성숙시켜 마지막 단 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집이 .. 詩舍廊/시편 2008.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