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김기택 쥐 /김기택 구멍의 어둠 속에 정적의 숨죽임 뒤에 불안은 두근거리고 있다 사람이나 고양이의 잠을 깨울 가볍고 요란한 소리들은 깡통 속에 양동이 속에 대야 속에 항상 숨어 있다 어둠은 편안하고 안전하지만 굶주림이 있는 곳 몽둥이와 덫이 있는 대낮을 지나 번득이는 눈과 의..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9.01.18
무인도를 위하여/신대철 무인도를 위하여 개나리꽃이 피지 않는 걸 보고 봄을 기다린다 언 귀를 비빈다. 살아 남아야지, 개나리꽃이 피지 않는 걸 보고 봄을 기다린다. 할 말은 미리미리 삼키고 생수를 마신다. 바닥난 하늘을 본다. 흐림. 함박눈이 내리려나? 꼬리를 감춘 사람들이 얼핏 온화해 보인다. 1974..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9.01.08
가을 저녁의 시 (김춘수 ) 가을 저녁의 시 (김춘수 ) 누가 죽어가나보다 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세상 외롬 속에서 물 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애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 그 누가 죽어가는가 보다. 풀과 나무 그..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9.01.08
상리과원(1955. 서정주시선) 상리과원(1955. 서정주시선) 미당 서 정주(1915~2000) 꽃밭은 그 향기만으로 볼진대 한강수(漢江水)나 낙동강 상류와도 같은 융융(隆隆)한 흐름이다. 그러나 그 낱낱의 얼굴들로 볼진대 우리 조카딸년들이나 그 조카딸년들의 친구들의 웃음판과도 같은 굉장히 즐거운 웃음판이다. ..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9.01.08
삶을 살아낸다는 건 /황동규 삶을 살아낸다는 건 /황동규 다 왔다. 하늘이 자잔히 잿빛으로 바뀌기 시작한 아파트 동과 동 사이로 마지막 잎들이 지고있다, 허투루루. 바람이 지나가다 말고 투덜거린다. 엘리베이터 같이 쓰는 이웃이 걸음 멈추고 같이 투덜대다 말고 인사를 한다. 조그만 인사, 서로가 살갑다...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8.12.06
가지가 잘린 떡갈나무/H.헤세 가지가 잘린 떡갈나무/H.헤세 나무여, 그들이 너를 잘라 버렸구나. 너는 너무도 낯설고 기이한 모습으로 서 있다! 수백 번 겪은 고통 끝에 남은 건 고집뿐이로구나! 나도 너와 같다, 잘려 나가고 고통 받은 삶을 떨치지 못하고 날마다 고통을 딛고 일어선다. 내 안에 있던 부드러움..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8.03.05
내 노동으로 /신동문 내 노동으로 /신동문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을 한 것이 언제인가. 머슴살이하듯이 바친 청춘은 다 무엇인가. 돌이킬 수 없는 젊은 날의 실수들은 다 무엇인가. 그 여자의 입술을 꾀던 내 거짓말들은 다 무엇인가. 그 눈물을 달래던 내 어릿광대 표정은 다 무엇인가. 이 야..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8.03.04
산정묘지 1/조정권 산정묘지 1 겨울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산정..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8.03.02
벼랑에 매달려 쓴 시 /정호승 벼랑에 매달려 쓴 시 / 정호승 이대로 나를 떨어뜨려다오 죽지 않고는 도저히 살 수가 없으므로 단 한사람을 위해서라도 기어이 살아야 하므로 벼랑이여 나를 떨어뜨리기 전에 잠시 찬란하게 저녁놀이 지게 해다오 저녁놀 사이로 새 한마리 날아가다가 사정없이 내 눈을 쪼아 먹..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8.02.24
아름다운 무단 침입/박성우 아름다운 무단 침입/박성우 별일은 아니었으나 별일이기도 했다 허리 삐긋해 입원했던 노모를 한 달여 만에 모시고 시골집 간다 동네 엄니들은 그간, 시골집 마당 텃밭에 콩을 심어 키워두었다 아무나 무단으로 대문 밀고 들어와 누구는 콩을 심고 가고 누구는 풀을 매고 갔다 누.. 이야기舍廊/좋은 詩 모음 2018.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