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 2210

미나리

. #미나리 청도가 고향인 친구덕에 매년 이맘때면 #한재미나리 맛을 본다. 어제 오후 불쑥 '미나리 먹자' 연락이 와 단골식당에서 삼겹살과 함께 먹었다. 아삭과 향기는 여전하더군.^^ 예년 같으면 안양 여러분들과 함께 왁자하게 회포를 풀었겠지만 집합금지의 시절이라 셋이서 단촐하게. 이 글 보고 서운해 할 분들 계실텐데.. 형편 이해해주시길... 먹고 남은 한 단은내가 들고 왔다. 둘은 홀애비니 뭐.. 처치가 만만찮을 터. 요걸로 저녁에 뭘해먹을까? 미나리 대패삽겹살말이 구이를 할까? 새파란 전을 부칠까? 돌돌 말이 강회를 할까? 그냥 무쳐 먹으까? ㅎㅎ 고맙네, 친구^^

삼월

. . 삼월 1979년 삼월이면,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던 때. 긴 반항을 그치고 조금 제 정신을 차렸을 때, 내 길에서 너무 멀리 벗어난 나를 발견했다. 다시 돌아가려고 애썼지만 참 힘들었던 그때. 결국 중간쯤에서 다른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고 지금 여기에 섰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그게 내 인생이니 그러려니 한다. 길은 아직도 내 앞에 여러갈래로 펼쳐져 있으니 끝은 알 수 없다. 2021년 삼월, 오래 만져온 시집 원고 마무리가 거의 끝나가고 실업도 끝나간다. 그리고 둘째는 먼 섬에서 날아갈 준비중이다. 예쁘게. 210327

밀면과 수육 한 점

. 밀면과 수육 한 점 어제 이빨 본 뜨러 범계에 갔다가 볕이 좋아 친구와 밀면 생각이 났다. 전화를 걸어 친구를 부르고 좀 일찍 도착해서 아트센터 앞마당에서 한참 봄꽃과 햇살 맞이를 했다. 마춤하게 도착한 친구와 먼저 당구 한 게임 치고 오니 길게 줄섰던 밀면집 점심 손님들이 한바탕 빠져나갔다. 밀면 먹어본 지가 한 오 년 정도 된 것 같았다. 회포도 풀겸 과감하게 물밀면 곱배기를 시켰다. 그새 미안한 인사와 함께 밀면 값이 천 원 올랐다. 당구를 내가 이겨 밀면 값을 치를 친구에게 살짝 미안했다. 그래봤자 그것도 천 원이지만.. 한참 기다려 나온 밀면은 시원 푸짐했다. 삶은 계란 밑에 돼지고기 수육 두 점. 빨간 양념과 살얼음 속에 탱탱한 밀면 가닥들. 식초를 조금 치고 잘 섞다 수육을 집었다. 난 ..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 장석남

. . 風笛 3 - 경포 바닷가에 가 바닷가에 놓아둔다 소나무숲은 마음 속에 있다 어둔 시간이 와 있다 가슴에서 누군가 살림을 하고 작은 시냇가를 건너가는 나무다리 지나가면, 솎아냈던 슬픔들이 삐걱삐걱 알은체를 한다 나는 바닷가가 되어 있고 소나무숲은 육신 가득 수런거린다 -장석남. .문학과지성사.1991 ------------------------------------------------------- 애정하는 장석남 다시 읽기 1. 이때 시들에는 김명인시인의 모습이 어른.. 삼십년.. 시인은 참 멀리 사라졌구나.

거울 /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 . 한 시간 오십 분 짜리 詩 한 편. 소문으로만 알았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처음 봤다. 한 개인의 역사도 인류의 역사보다 가볍지 않다. 영화 속에는 누구도 주인공이 아니지만 모두 역사 속을 떠돈다. 느린 시간과 풍경, 낡은 문과 거울의 미장센들. 감독의 아버지라는 시인이 들려주는 詩들. 전쟁, 가족, 어딘가에서는 불이 나고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 사이에 섞여 있다. 떠난 사람, 기다리는 사람,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이 한 시절을 배회한다. 누구도 분명히 말하지 않으므로 영화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시간을 지나온 한 시선이 그 시간 속에 뒤섞여 뒤돌아보는 온갖 마음이 있을뿐. 그런 것들이 회색 관목이 펼쳐진 들판의 바람으로, 무겁게 내리는 비로,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관계로 의미 없는 ..

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 김기택

. . 잘 익은 사과 / 김혜순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빰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 -다산책방. 2016 ----..

물 건너는 사람 / 김명인

. . 유적에 오르다 쥐불에 그을린 들판은 거뭇거뭇하다. 마음의 흉터처럼 타버린 것들이 온통 유적이 되는 산간 분지 메마른 땅이 거름을 얻으려고, 병든 몸이 병을 고치려고 경원가도, 봄이 온다고 제가끔 사려잡은 나무들이 막 피어오르는 물빛에 젖고 있다 덕진은 어디쯤일까, 이 길 끝에 있다는 추가령계곡 찢긴 계곡은 쓸쓸히 물놀이져 입 안에서 맴돌아도 휴전선 이북이고 나는, 삼팔선을 넘으려니 그 경계에 드는 차를 검문소가 가로막는다, 차장 밖으로 봄풀인 듯 파릇파릇 한 아이가 무거운 가방을 메고 들길을 걸어간다, 그 뒤를 물색 없는 후생으로 따르는 저 만취한 아지랑이 눈 시린 세월을 흔들어 갈 길을 지우는 것은 그것조차 건너가는 것이기 때문, 눅눅히 젖어 흐르는 강물도 거기서 빛깔을 얻었으리라 하나, 오늘 ..

선산

. #신념 사진 둘. 첫번째 사진은 중학교 1학년때 두번째 사진은 아마 국민학교 입학 전. 한 번도 뵙지 못한 할아버지 산소 앞에서 큰아버지, 아버지, 사촌들과 함께 찍은 참 오래된 사진들이다. 그래. 나도 선산이 있다. 김해 김씨 삼현파 자남세가 자손이다. 저 곳 화원 마비정 산자락에는 내 중시조부터 사진 속 큰아버지까지 잠들어 계신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없다. 세상 떠난 부모 형제, 그리고 조상들이 잠든 저 산에 같이 있지 못하고 삼십분 떨어진 낯선 교회 묘지에 홀로 계신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버지를 비롯한 우리는 크리스찬. 큰 집은 아니다. 큰집의 안위를 위해 다른 신을 섬기는 가족은 선산에 들지 말았음 좋겠다는 어떤 분의 신념(?)이 있었다. 그러고 40년. 그 사이 어머니도 돌아가셨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