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한 손 / 고영민
. 황홀한 국수 반죽을 누르면 국수틀에서 국수가 빠져나와 받쳐놓은 끓는 솥으로 가만히 들어가 국수가 익듯, 익은 국수를 커다란 소쿠리째 건져 철썩철썩, 찬물에 담갔다가 건져내듯, 손 큰 내 어머니가 한 손씩 국수를 동그랗게 말아 그릇에 얌전히 앉히고 뜨거운 국물을 붓듯, 고명을 얹듯, 쫄깃쫄깃, 말랑말랑 그 매끄러운 국숫발을 허기진 누군가가 후르륵 빨아들이듯, 이마의 젖은 땀을 문지르고 허, 허 감탄사를 연발항셔 국물을 다 들이키고 나서는 빈 그릇을 강산히 내려놓은 검은 손등으로 입가를 닦듯, 살다 갔으면 좋겠다 -고영민 . 창비시선. 2009 ----------------------------------------------- 국수 한 그릇을 비우는 일, 그 시간과 입맛 속에도 한 역사 분량의 마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