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 2210

오래된 책

. 오래된 책 서재를 꾸미면서 적지 않은 책들을 버렸지만 내 서가에는 여전히 오래된 책들이 제법 많이 꽂혀있다. 서머셋모음의 이 단편집도 오래된 보잘것 없는 책 중 하나다. 1997년 청목이라는 출판사에서 펴낸 문고판이다.활판인쇄본으로 글씨도 작고 무엇보다 언제 내 손에 들어왔는지, 그리고 내 손을 떠났는지 종이는 누렇게 바랬고 위에는 먼지가 켜켜이 쌓여 거무티티하다. 작년 말부터 단편소설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시와 인문서에 편중된 독서로 서사에 대한 감각이나 감동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책장을 뒤져 레이먼드커버 같은 비교적 최근 작가들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그 재미가 새삼 쏠쏠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책을 읽는다. 이 책, 서머셋모음의 단편집도 그 중 하나다. 대충 1920년 경..

서머셋모음 단편집

. 오래된 책 서재를 꾸미면서 적지 않은 책들을 버렸지만 내 서가에는 여전히 오래된 책들이 제법 많이 꽂혀있다. 서머셋모음의 이 단편집도 오래된 보잘것 없는 책 중 하나다. 1997년 청목이라는 출판사에서 펴낸 문고판이다.활판인쇄본으로 글씨도 작고 무엇보다 언제 내 손에 들어왔는지, 그리고 내 손을 떠났는지 종이는 누렇게 바랬고 위에는 먼지가 켜켜이 쌓여 거무티티하다. 작년 말부터 단편소설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시와 인문서에 편중된 독서로 서사에 대한 감각이나 감동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책장을 뒤져 레이먼드커버 같은 비교적 최근 작가들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그 재미가 새삼 쏠쏠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책을 읽는다. 이 책, 서머셋모음의 단편집도 그 중 하나다. 대충 1920년 경..

한국시조문학 2021 봄호

. . 어려운 가운데 계절마다 꼬박꼬박 얼굴을 디미는 '한국시조문학' 봄호가 왔다. 졸시조 두 편도 실렸다. 시조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다. 서정시에 대한 편애 때문이다. 그래도 한 가지 변명을 하자면 고리타분한 시조는 쓰지 않으려 한다. 서정시의 느낌을 시조의 틀에서 표현하는 것, 그것이 내가 시조를 쓰는 이유다. 그래서 그런가, 모임에서 온라인 이벤트 백일장을 열었는데 스무 명 남짓 응모하여 열 명에게 상을 줬는데 그 열명에도 끼질 못했다. ㅎㅎ. 참가상으로 라면 한 상자 보내준다는 기별이 왔다. 그럼 됐다. ^^

부작용

. 부작용 작년에 회사 짤리고 집에 틀어박힌지 어느듯 7개월이 지났다. 집밖으로 나가는 일은 거의 열흘에 한 번꼴로 가까운 친구와 당구치고 소주 한 잔씩 하는 일로 외출을 하고 보통은 오후에 강아지 산책시키러 나가는 외엔 책상에 앉아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일이 전부다. 물론 갑갑증이 임계치에 다다를 때 몇 번 짧게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고 집안 대소사로 볼 일을 봐야할 때도 있긴 했다. 슬슬 계획하고 있는 밥벌이 준비를 시작할 때가 되어 이것저것 챙기다보니 어느새 틀어박힌 생활에 익숙해진 나를 발견한다. 오늘 나보다 앞서 일을 시작한 이를 만나 조언을 구할 약속이 잡혔는데 막상 나가려니 가슴이 답답하다. 어려운 사이도 아닌데 그간의 안부 같은 인사치레나 의례적으로 나눌 대화 같은 것들에 미리 질리는 느낌..

악의 평범성 / 이산하

. 촛불은 갇혀 있다 아날로그 양초촛불이 디지털 LED촛불로 바뀌었다. 아날로그 촛불은 자기 온몸을 다 태우고 녹지만 디지털 촛불은 장렬하게 전사할 심지와 근육이 없다. 노동자에서 소시민적 인텔리로 동력이 바뀐 신호였다 땅을 갈아엎어 토양을 바꾸지는 못하고 기껏 나무를 골라 옮겨 심을 뿐인데도 연일 축제이다. 그래서 촛불도 계속 광화문 광장에 갇혀 있었고 세월호의 노란 리본도 광화문 광장에 갇혀 있었다. 촛불의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미했다. 30년 전 박종철, 이한열의 시체를 거름으로 피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꽃은 피자마자 졌다. 30년 후 세월호 아이들과 백남기의 시체를 거름으로 피운 불꽃도 피자마자 졌다. 6월항쟁에 벽돌 한 장씩을 얹었던 청춘들은 노동없는 디지털 촛불에 눈이 멀어 모래알처럼 흩어..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 장석남

. . 밤바다에서 - 목 너머에서 밤바다 위로 빈 배가 한 적 스윽 흘러간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아무 흔적도 없이 빈 배가 아무 체적 없이 내 앉은 곳을 스쳐서 간다 죄 없이 바다에 닿은 바위들 해안을 깎는 물살들 나는 조금 남은 손톱달에 링거병을 걸고 누워서 율도국율도국 하며 그 배를 따라 흘러가본다 깨어보면 아무 죄 없이 힘겹게 나를 해안에 밀어다놓는 실낱 같은 물결 소리들 섬마을에 조금 남은 감꽃이 마저 졌다 -장석남 문학과지성사. 1995. --------------------------------------- 장석남 다시 읽기 2. 개인적으로 장석남시인의 시집중에서 더 좋아하는 시집이다. 서른 살 시인은 왜 벌써 떠날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일까? 늘 떠나는 덕적도 바다와 더불어 살아온 탓일까..

사랑의 기적

. 로빈 윌리엄스의 미소와 로버트 드니로의 미소. 그 표정들에 대한 오래된 신뢰로 영화를 봤다. 미소는 모조리 슬펐다. 30년 동안 자신을 잃은 레오너드, 세이어박사의 노력으로 잠깐 자신을 다시 찾았으나 이번에는 스스로 의식을 하며 자신을 잃어버리는 레오너드. 그 상실의 과정을 겪는 한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결국 죽음도 그런 것 아닐까? 누구나 지금 현재 내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을 안다. 그저 시간이 느려 두려움이 덜할뿐. 노년에 이르러 죽음의 문앞에 서면 레오너드의 두려움과 똑같은 심정이 되지 않을까? 잠깐 깨어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우리는 그 순간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소는 슬펐지만 로빈 윌리엄스와 로버트 드니로의 연기는 엄청나다. 잠깐 그들이 영화배우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