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 2210

자백

자백 동생의 세뱃돈을 갈취한 적 있다. 심부름 거스럼돈으로 사탕을 사 먹은 적 있다 모퉁이 가게에서 사과 한 알을 훔친 적이 있다 아버지 주머니에서 얼마간 돈도 훔쳤다 성적표를 고쳤었다 아주 자주 책값을 뚱쳤다 친구의 책을 몰래 팔아먹었다 돈을 빌려 쓰곤 갚지 않은 적이 많다 작정하고 도둑질도 여러번 했다 그 중에는 정말 비양심적인 좀도둑질도 있다 거짓말 따위는 죄목에 넣을 수도 없다 착한 소녀에게 음심을 품었다 착한 여자의 진심을 짓밟은 적이 있다 배신을 했으며 변절도 했다 고변도 했다 뇌물을 받았으며 횡령도 했다 외도도 했다 사기도 분명 쳤을 것이며 경미하지만 뺑소니도 쳤다 음주운전을 수차례 했다 적성국 주민을 신고 없이 접촉한 적도 있다 국세 체납 경력이 있고 술 취해 택시 기사 안경을 분질러 벌금..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 허수경

. . 온몸 도장 꽝! 그리고 저 온몸 도장 부딪힌 쪽이 더 선명하고 부딪칠 때 머리를 돌린 흔적까지 있는 유리창에 찍힌 새의 온몸 도장 새는 뇌진탕으로 추락했을까, 마당에 나가본다 없다, 새는, 고양이가 금방 다녀갔나 없다, 온놈 도장은 있다 없다, 유리창 이쪽과 저쪽 사이에는 제삼의 세계가 존재하나 그 세계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새는 온몸 도장을 찍었나 마당에는 빛만 가득하다 빛 속으로 온몸 도장마저 끔찍하게 사라진다 유리창에는 내 그림자만 검은 온몸 도장 같은 내 그림자만 사라지자! 끔찍하게 저 도장너머로 그런 다음 무얼 하지? 아직 마당엔 빛의 연기가 하얀데 빛의 향기만이 멈추어 섰는데 -허수경 2016. 문학과지성 시인선 490 -------------------------------------..

공동번역

. #공동번역 성경통독 올해 성경 읽기는 공동번역본 + NIV로. 갓피아 일년 통독 프로그램 따라 신구약 통독. 별도로 신약 통독 병행. 공동번역본 통독은 처음인데 카톨릭식 지명과 인명이 다소 낯설지만 친절한 문체의 번역이 좋다. 신교 구교 구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神은 그저 있을뿐인데 누대에 걸쳐 인간들이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느라 왜곡하고 나누었을뿐. 제법 오래전 우리나라 신.구 교계가 화합과 회복을 위해 성경 공동번역이란 아름다운 프로젝트를 완성했음에도 그 결실을 함께 완성시키지 못한 아쉬움으로 남아있는 공동번역 성경. 한 해 동안 그 원래 마음을 생각하며 읽어보기로 한다. 210109

나무 / 김용택

. . 뜬구름 구름처럼 심심하게 하루가 또 간다 아득하다 이따금 바람이 풀잎들을 건들고 지나가지만 그냥 바람이다 유리창에 턱을 괴고 앉아 밖을 본다. 산, 구름, 하늘, 호수, 나무 운동장 끝에서 창우와 다희가 이마를 마주대고 흙장난을 하고 있다 호수에 물이 저렇게 가득한데 세상에, 세상이 이렇게 무의미하다니. -김용택 . 2002. 창비시선 214 ------------------------------------------- 이 무렵 시인은 섬진강댐 근처 분교에서 아이들 몇을 가르치고 있었나보다. 서울에 가족을 두고 혼자, 아니 늙은 어머니랑 살았나보다. 이미 오래 詩를 써왔을 텐데 어쩌면 슬럼프였는지 모르겠다. 詩들은 심드렁하다. 섬진강과 아이들, 산그림자, 미루나무는 변함없지만 시인은 기운이 없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브레히트

. .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 1944년 1985. 한마당 -------------------------- 새해 읽을 첫 시집으로 브레히트를 골랐다. 소문으로만 알았던, 시대의 눈동자 브레히트. 그의 목소리가 내 한 해를 깨워주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눈을 부릅뜨고 시대를 바라보며 꾸밈없는, 그러나 신란한 목소리를 詩에 담아 전하는 시인의 정신을 만났다. 때로는 아름답다는 것은 사치이다. 詩 또한 그렇다. 지금은 어떠한가?

제비꽃

. . #제비꽃 지난 일년 동안 매일 꽃을 하나씩 포스팅 했습니다. 이왕 꽃 이름 공부를 하는 김에 랜선 친구들에게 같이 소개하면 좋을 것 같다 싶어서였습니다. 가능하면 우리 꽃을, 적어도 우리 이름을 가진 꽃들을 알리려고 했습니다. 제 꽃 공부는 잘 된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꽃과 이름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물론 아직도 모르는 것이 더 많지만요. 그래서 올 한 해도 더 해볼까 합니다. 밑천이 달려서 풀과 나무도 함께 할 작정입니다. 올해 첫 꽃은 제가 꽃중에 제일 좋아하는 제비꽃입니다.^^ 작년 파주에서 일할 때 사무실 앞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제 철도 아닌데 길가 나무밑에 느닷없이 피어있던 녀석입니다. 저는 이제 그곳을 떠났지만 그 뜬금없는 자리에 꿋꿋이 피어 있던 이 제비꽃 생각은 오래 남..

송년정리

. . #송년정리 1. 올해 성경읽기는 신구약 통독 1회 후 요한복음 읽기로 마무리. 여전히 나는 神으로부터 아직 멀리 있다. 내년엔 조금 더 가까워 지고 싶다. #송년정리2 한해 동안 대략 250권의 책을 읽고 세상에 詩를 11편 내놓았다. 책은 얇은 시집 포함해서 사흘에 두 권 정도 읽은 셈이다. 회사에서 짤린건 당연한 일이다. 어쨌든 너무 많다. 허겁지겁, 얼렁뚱땅 읽은 탓이다. 새해에는 100권 안으로 읽자 맘 먹는다. 시집은 한 권을 일주일 동안 읽기로. 새책을 사기보단 있는 책을 다시 정독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