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 2210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 / 찰스 부코스키

. 잊어버려 자, 들어 봐, 난 내가 죽을 때 누가 우는 거 별로야, 그냥 처분 정ㄹ차나 밟아, 난 한세상 잘 살았어, 혹여 한가락 하는 인간이 잇었다고 해도, 나한텐 못 당해, 난 예닐곱 명분의 인생을 살았거든, 누구에게도 두지지 않아. 우리는 , 결국, 모두 똑같아, 그러니 추도사는 하지 마, 제발, 정 하고 싶으면 그는 경마 도박을 했고 대단한 꾼이었다고만 해줘. 다음 차례는 당신이야, 당신이 모르는 걸 내가 알고 있거든, 그럴 수도 있단 얘기야. - 찰스 부코스키 민음사. 2016 --------------------------------------- Don't try. 애쓰지 마라. 시인의 무덤에 새겨진 비문이다. 수 년간 읽은 詩중에서 가장 속 시원한 시들. 기교도 철학도 없지만 거친 삶을 사..

눈물이라는 뼈 / 김소연

. . 모른다 꽃들이 지는 것은 안 보는 편이 좋다 궁둥이에 꽃가루를 묻힌 나비들의 노고가 다했으므로 외로운 것이 나비임을 알 필요는 없으므로 하늘에서 비가 오면 돌들도 운다 꽃잎이 진다고 시끄럽게 운다 대화는 잊는 편이 좋다 대화의 너머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외롭다고 발화할 때 그 말이 어디서 발성되는 지를 알아채기 위해서는 시는 모른다 계절 너머에서 준비 중인 폭풍의 위험수치생성값을 모르니까 쓴다 아는 것을 쓰는 것은 시가 아니므로 -김소연. 문학과지성 시인선 369. 2009. ------------------------------------------- 한 며칠 여성 시인들의 시를 읽었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내게 책 읽기는 늘 한 권이 또 다른 두 세권을 권하는 경향이 있는 탓도 있을 것이다..

내 몫의 행복

. #내 몫의 행복 시간이 많으니 하는 일은 역시 책 읽기가 제일 많다. 손 닿는 여기저기에 이런저런 책을 두고 하루에 많게는 열 권 정도의 책을 찔끔찔끔 읽는다. 나름 계획을 세워 시간표에 따라 읽지만 별 의미 없다 싶으면 한 권을 집중적으로 읽기도 한다. 짬뽕식(?) 책 읽기는 가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가령 최승자의 처절한 시를 읽고 바로 문태준의 시를 읽으면 문태준의 잔잔한 삽작에 죽음의 기운이 기웃거리는 걸 느낀다. 시집 두 권의 기운이 뒤섞이는 탓이다. 파울첼란을 읽다 휘트먼을 읽어도 그렇다. 그래서 가능하면 시집은 바로 이어서 읽지 않으려 한다. 성경, 외국시, 한국시, 단편소설, 시론, 공정 경제, 신화, 사회 폭력, 슬로우라이프, 기타 관심사, 먹고 사는데 필요한 책, 그리고 좀 집중해..

리얼리스트 김수영 / 황규관

. . 페친인 황규관시인으로부터 싸게(?) 얻은 '리얼리스트 김수영'을 며칠에 나눠 읽었다. 오래 동안 시인들의 시인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퀭한 눈의 김수영의 시들은 나 또한 자주 읽었지만 시인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삶의 궤적을 따라 그의 시들을 살펴보는 좋은 시간이었다. 신화가 된 시인의 실재적 면모와 시를 추적, 분석하는 황시인의 김수영 사랑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병든 자로부터의 도피'. '그림자 없는 詩' 같은 김수영에 대한 규정과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에서 들리는 무한한 전진의 정신으로서의 해석은 기존에 내가 김수영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잘난척, 냉소, 난해, 투쟁 등의 이미지들이 편협한 인식이었음을 깨우쳐줬다. 김수영을 역사적으로 읽어준 책이란 점에서도 앞으로 김수영 시를 다시 읽을 ..

하루키 단편걸작선 /무라카미하루키

. . 딸의 서가를 기웃거리다 작년부터 시작한 하루 한 편 단편소설 읽기. 그럭저럭 일년을 넘겼다. 하인리히 뵐, 레이먼드 커버, 헤밍웨이, 기드 모파상의 소설들을 새로, 다시 읽었다. 모파상의 소설집은 63편이나 돼서 가장 최근까지 한 두 달 넘게 읽었다. 고등학교이절 이후 다시 읽은 것이니 40여년 만의 일이었다. 읽은 기억이 나는 건 한 서너편 정도이니 처음 읽었다 해도 무방할 정도다. 150년전의 세상이나 지금의 세상이나 마차가 차로 바뀐 것 말고 별로 다른게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통찰인지 세상 이치의 얄팍함인지.. 분위기를 바꾸고자 작은 딸 책장에서 하루키를 한 권 집어와 읽는다. 이건 한 이십여년 전후 하루키의 세상읽기 같은 것들이겠지. 그 세상은 어떨지. 나도 지나온 시절이지만..

숨어사는 즐거움 / 허균

. . 詩란 성미에 맞으면 되니 두보의 고음 苦吟*이 우습고 술이란 마음을 화평하고 즐겁게 하자는 것이니 도연명의 기나친 기주 嗜酒도 싫어한다. 만약 詩로서 질투하고 이름을 다투면 어찌 성미에 맞는다 하겠으며, 만약 술로써 미치고 욕질하면 어찌 마음을 화평하고 즐겁게 한다 하겠는가. - 소창정기 * 苦吟 : 시를 잘 짓기 위해 이리저리 생각하는 것 ----------------------------------------------- 수 년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었다. 화장실에 두고서. 시대의 아웃사이더 허균이 중국 아웃사이더들의 자기 합리화를 위한 글들을 모아 스스로를 위로하는 책이다. 법정스님이 추천한 책이기도 한데 그 또한 아웃사이더 아니던가? 그리고 지금의 나도 완벽한 아웃사이더이니 어찌 공감하..

이 時代의 사랑 / 최승자

. . 일찌기 나는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앗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최승자 . 문학과 지성 시인선 16. 1981. ----------------------------------------- 내가 대학을 들어갔던 해에 나보다 열 살 많은 시인이 세상에 내놓은 첫 시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