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의 부재 백화점의 부재 반포를 지나며 그녀는 차창을 내린다 짐짓 눈을 내리깔고 얼굴을 밖으로 내밀며 긴 숨을 들이킨다 음, 그래 이 냄새야 벌써 느낌이 다르잖아 이거야말로 제대로 어울린 모습이지 지나는 사람들 걸음도 다르잖아 나는 이 곳에 있는 게 어울려 이수교차로를 지나 동작대로를.. 詩舍廊/~2021습작 2016.11.27
어떤 출구 어떤 출구 한 오년 사이 출구에서 피흘리며 쓰러진 사람을 여럿 보았다 느닷없이 쓰러졌고 다시 일어나지 못한 이도 있다 쓰러졌단 소리 들리면 보이지 않았다 출구를 나섰으므로 이 년마다 한 번 물청소를 하고 출구 검사를 강제로 시킨다 들어간 모든 것이 저작되고 뒤섞이고 추출되는.. 詩舍廊/~2021습작 2016.11.24
축소 지향의 어머니 축소 지향의 어머니 어머니가 작아지고 있다 키가 작아졌다 어깨가 좁아졌다 얼굴이 작아졌다 젖이 작아졌다 궁둥이가 작아졌다 손이 작아졌다 詩舍廊/~2021습작 2016.11.24
분홍의 무게 분홍의 무게 분홍의 속을 가른 냉동 탑차 한 대 분홍 사내가 불쑥 분홍 한 덩이를 어깨에 얹는다 휘청거리며 차에서 내리는 분홍 한 덩이 분홍 갈고리에 찍혀 흔들거리며 냉동고 한쪽에 분홍으로 걸린다 분홍 속으로 들어오는 분홍 외투의 여자 분홍 사내는 뭉텅 분홍 한 덩이를 자른다 .. 詩舍廊/~2021습작 2016.11.24
사랑이란 사랑이란 여섯시쯤. 아내가 전화를 했습니다. 사랑은 방긋 웃어주려 노력하는 것이라는데 당신 혹시 아느냐고. 저한테 예수님이 강권하신 사랑이 없음을 알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20161110 詩舍廊/~2021습작 2016.11.10
입동날 밤비 입동날 밤비 보지 않아도 당연히 창밖은 깜깜할 것이다 몇 몇 젖은 가로등들은 번쩍번쩍 떨어지는 잎들 사이 주홍색 계절을 비추고 있을 것이다 줄기를 감춘 검은 비는 지난 여름 오동나무 둥치에 지린 강아지 오줌 그 며칠 뒤 셔츠에 쏟아진 커피또는 얼마 전 가을날 절규하던 아내의 눈.. 詩舍廊/~2021습작 2016.11.07
路祭 路祭 일주일에 한 두번씩 길어깨는 목숨을 받는다 지난 밤 여기가 아닌 저기로 가고자 했던 따뜻한 의지는 불의의 속도에 붙잡혔다 찰나의 역사는 그에게도 펼쳐졌을까 어미나 사랑이나 추억 같은 것들 꽃대만 남은 루드비키아 아래는 마른 피와 말 없는 생명 하나 고개 돌려 누웠다 그.. 詩舍廊/~2021습작 2016.11.02
어떤 깊이 어떤 깊이 아기와 소와 강아지에게는 까맣고 촉촉하고 그러면서도 투명한 거울이 있다 그 곳에 나를 비추면 슬픔이 속으로 젖는다 그런 것들은 이제 내겐 없는 것 그저 아기와 소와 강아지에게서나 겨우 만날 수 있는 깊고 착한 그런 것 20160920 詩舍廊/~2021습작 2016.09.20
몇 몇 사랑에 관하여 몇 몇 사랑에 관하여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사랑은 나름의 성취를 이루었다 절망으로 실망으로 타협으로 욕망으로 권태로 부정으로 두려움으로 끈질김으로 이룬 사랑들 나머지 두 개의 사랑 미처 도망치지 못한 사랑과 그 탓에 멈춰버린 사랑 그 사이에 나와 나 아닌 것이 여지껏 팽팽하.. 詩舍廊/~2021습작 2016.09.13